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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가 다른 사람들/예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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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보누리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조회7,587회 작성일2004-04-07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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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어렸을 때다. 끝도없는 ‘계몽주의 아동소설’에 신물이 날 무렵, 『오멘』이란 영화를 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어느 사이비종교집단의 리플렛이 내손에 들어왔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21세기에는 모든 인간들의 뒷통수에 바코드가 찍힐 것이다. 그 바코드의 숫자는 666. 짐승의 수다. 인간이 짐승이 되어 서로를 죽이고…(한 마디로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진다). 그러므로 예수천당, 불신지옥.”

당시에 나는 상당히 쫄았다. 꿈속에서 웬 사악한 꼬마녀석에게 뒷덜미를 붙들려 불도장을 찍히기까지 했다. 모양이나 크기를 보면 담임선생의 ‘참잘했어요’ 도장과 완벽히 일치했지만, 새겨진 문구는 ‘참 잘했어요’가 아닌 ‘999’다. 왜 ‘666’이 아니라 ‘999’냐고? 당시 내가 열광했던 어느 일본산 만화영화 탓일 게다.

이렇듯 영화, 리플렛, 만화의 세 가지 텍스트가 절묘한 꼴라쥬로 융합해 정체불명의 ‘꿈 텍스트’로 전화했고, 결국 내가 애지중지하던 아기곰 이불이 한바탕 물난리를 겪고 말았다. 내가 도장이나 바코드 따위를 한동안 탐탁치않아했던 것은 내 정치적 올바름이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 때문이 아니었다. 그 ‘짐승’의 표식이 우선 불쾌했던 것이다. 그래서 666, 999, 짐승, (짐승일 수 밖에 없는)아기곰은 내 무의식에서 기묘한 동일체가 되었다.

‘사건’ 이후 약 22년이 흘러 그때의 공포, 자기모멸(물론 아기곰 때문이다)을 자연스레 잊었다. 바코드 따위야 지천에 깔려있지않은가. 나는 지금 바코드가 커다랗게 찍힌 바나나맛 우유를 맛있게, 쪽쪽 빨아먹고 있다. 그리고 내 뒷덜미에는 보이지 않는 바코드가 찍혀있다.
대한민국 국적의 정규직 남성 노동자.

참, 자랑스런 바코드다. 좀 마음에 걸리는 건 임금이 최저생계비에 육박한다는 점일텐데, 대통령께서 친히 ‘노동귀족’ 작위를 하사해주셨으므로 대수로울 게 없다. 내가 비록 돈을 못벌긴 하지만, 사장한테 이빨이 나갈 정도로 두들겨 맞거나 사전통보 없이 내 책상이 복도로 나가앉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또 하청노조를 만들어 크레인에 올라갈 일도 없다. 나른하고 편안한 일상. 돈이 없어 끼니도 잘 못챙겨먹는데 살이 피둥피둥 찌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의 바코드는 짐승의 표식이 아니라 귀족의 표식, 혹은 대한민국 공식등록상표다.

그런데 오늘 까맣게 잊었던 아기곰 이불이 고통스럽게, 그리고 선명하게 다시 떠올랐다.
동남아시아 국적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이들과 하루를 함께 했다. 명동성당에서 1백여일간 천막농성 중인 이들을 따라 안산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백, 수천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아아, 이 아기곰들의 홍수. 지나던 이들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도장이 되어 그들의 뒤통수에 꽂혔다. 짐승의 표식이다. 나는 거리에서 똑똑히 들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다정하게 같이 장을 보고 돌아가는 중년의 부부가 이주노동자들을 향해 속삭이던 말을.
“한국사람도 일할 데가 없어서 난린데, 저런 것들까지 설쳐대니 원. 싹 쓸어버려야 돼.”
“빨간 띠까지 두르니까 진짜 정나미가 뚝 떨어지네요. 저, 저 소리지르는 거 보세요. 돼지 멱따는 소리지 저게 사람 소리야?”

아기곰, 돼지, 사람이 한데 어울려 내는 소리. 또렷한 한국말인데도 사람들은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우리는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주노동자들은 ‘느낌표’류의 감상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길잃은 아기곰, 상처입고 울부짖는 돼지 취급을 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노동자, 글자그대로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기를 원한다.
노동자에게 동정은 필요없다.

다른 한편에서 이주노동자에 우호적인 목소리도 있다. 싼값에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력이어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다. 일리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논리다. 현재의 한국 정규직들도 예전에 싼 값에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력이었다. 그런 생각이 한국노동운동을 꾸준히 약화시켜왔다.

자본의 바코드는 언제나 그랬다. ‘개별적이어야 하며, 중복되어서는 안된다’고.
당연하다. 하나의 바코드로 통일되는 것은 상품이 더 이상 상품이 아니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곧 자본의 혼란과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만으로 각자의 뒷덜미에 새겨진 귀족의 표식, 인간의 표식, 짐승의 표식이 지워질까.

노동자는 하나다. 그러나 이것을 사실명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음절을 덧붙여야 한다. 노동자는 하나‘였’다. 당신이 만약 현대중공업 노조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았다면, 사내하청노조의 처절한 한걸음 한걸음을 보았다면, 그리고 안산역 앞에서 절규하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 각자의 바코드가 다르다는 것을 뼛속 깊숙이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해야하는 순간, 노동자는 급속히 분열되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통일을 말할 것인가. 어떻게 떳떳이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싸움의 목표는 단지 바코드를 ‘정규직’으로 통일하는 게 아니다. ‘바코드의 다름’을 고통스럽게 인식하고 또 지워나가는 과정, 그 과정이 중요해보인다.
뒷덜미가 아니라 서로의 얼굴에서 노동자를 읽기 위해서라도.


글 밑에 달린 쪽글들

무란사발 노동귀족<?>
대한민국에서 기자라는 신분이 노동귀족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이라는 단어의 고단함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기자라는 인텔리 집단의 고위층이 노동귀족이 되는 것은 그저 한 층정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감상적 인정주의나 인도적 감상주의로 불법체류자의 문제를 볼 때.
우리의 담론의 수위는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노동현장에서 불법체류자들이 차지 하는 자리는 어디인가?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항상 경쟁이라는 것이 있다.
그 불법체류자들이 경쟁하는 상대는 기자라는 직업군이 아니다.
그들의 직장경쟁상대는 우리의 하위층에 있는 고임금노동자들인 것이다.
사용자들을 더 배부르게 만들수 있는 노동자는 이런 고임금한국노동자들이 아니라 불법체류자들인 것이다.한국의 고임금노동자들의 생계보도 불쌍한 눈을 한 불법체류자들의 생계가 인도주의적 기자 눈에는 더 의미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기자의 자리는 불법체류자들의 노동경쟁자리가 아니다.
언젠가 그 기자자리를 놓고 불법체류자와 일자리 경쟁을 해야 하는 지경이 오면 그 때도 그 값싼 인도주의 정신이 살아 있을런지 알수는 없지만.......
이 땅의 비정규노동자들의 삶보다도 불법체류자들의 삶이 소중하다고 말해야 하는 기자의 신분이 정의롭다고해야 하는 메스컴의 이중성이 있다.
불법체류자들이 내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난 그들에게도 선거권을 줄 수가 있다.고임금에 더 많은 외국인들을 입국시켜서 한국의 노동자들의 고임금을 없애버리고,외국인들의 노동조합을 인정할 것이다.
모두 합법화 하고 그들을 국회의원에 참여 시킬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인가?
그러나, 나는 내자리를 넘보고 내 임금을 삭감시키는 불법체류자들이기에 그들이 싫다.나는 노동거지다. 2004/03/01

예루리 무란사발/ 값싼 인도주의가 아니라 연대가 필요하지요.^^ 제글이 모자라서 그렇게 읽혔나봅니다. 외려 그런 값싼 인도주의를 비판했는데, 느낌표까지 들먹이면서.
그리고 노동현장이란 말로, 그리고 '너는 하얀손 가진 기자잖아'라는 말로 한방에 기죽이려고 하는 습관은 스스로 편협하다고 폭로하는 짓 밖에 안됩니다. 그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을 당연시하지는 마세요. 그건 인도주의도 못되는 패배주의이고 사용자들의 마인드입니다.
내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이주노동자의 삶이 더 의미있다고 말했던가요? 아니죠.
님이 은근슬쩍 사기친 겁니다. 제 글만봐도 똑같이 의미가 있습니다.
님의 발언에는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는 시각이 깔려있습니다. 노동자가 아닌 노동력.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일 뿐 아니라 노동의 문제라는 것, 그건 동의하실 겁니다. 인권은 그렇다치고, 노동의 문제로 생각하다보면, 사실 너무나 복잡해지지요. 그런 부분들을 같이 진지하게 얘기해봐야합니다. 기성언론에서 거의 얘기안하는 측면이기도 하구요. 다만 님과 같은 소통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펜대나 굴리는 것들이 뭘 아냐'는 식의 찍어누르기가 설마 '소통의 방식'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되나요? 마음은 좀 편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2004/03/01

무란사발 길가에서 아이를 울리는 어머니가 있다.
참으로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러다가, 집에서 어린 아들하고 하루쯤 놀아 줄려고 하면 왜 그다지도 짜증이 나는지.....
마찬가지다 멀리서 불법체류자문제를 보면 인권이며 노동권이며가 보인다.
그러나, 내가 그 불법체류자와 일을 하다보니 짜증이 난다.
물론, 그 불법체류자들이 내 자리를 넘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사가 조그마하고 반이상이 방글라데시와 조선족과 몽골인으로 채워진 곳에서의 생존이다.
요즘 솔솔 몇몇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지는 말이다.
고임금의 한국인 두명정도는 퇴출<말이 좋아서 퇴출이지 자르는 거다.>시킬거라는 거다.다루기 힘들고 고임금인 한국인들의 월급여에서 남는 돈이 사장의 수입이니 할 말이 없다.
사용자의 마인드....비싼 노동력과 값싼 노동력이 있다면 누구를 써야 하는지, 답이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렇고, 인권도 노동권도 없는 한국에서 굳이 떠나지 않으려고 하는 불법체류자들의 저의가 난 궁금하다.인권도 있고 노동권도 있는 자국으로 가서 일하면 될텐데 왜 짐승대접을 받으면서도 이땅에서 붙어 있으려고 하는지 ......
방글라데시....전기도 수도도 인터넷도 아무것도 없는 산간오지에서 온 원시인수준의 사람들이다.그들이 지금 한국에서 인권을 노동권을 부르짖으며 한달 벌어서 방글라데세에서 반년을 살수 있는 돈을 벌고 있다.
불법체류자들 40만이 자국으로 송금하는 돈이 어디 대기업의 돈이던가?
재래시장에서나 회전되어 지는 돈들이 다이렉트로 우리 땅을 빠져 나가고 있다.
사용자들이야 아무런 타격이 없을까?
결국은 내수시장의 고갈이 서민들의 고통을 부르고 그 고통은 다시 소기업의 공장 가동률을 낮추고 있다.
방글라데시인들이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일을 하고 밥을 먹으니 기계는 아닌것이 확실하다.그러나, 한국땅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고통은 진정한 노동권을 말 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땅에서 한것이라고는 그저 돈을 벌어서 자국에 부치는 것뿐이었다. 세금을 내나, 국방의 의무를 지나,..... 2004/03/01

예루리 무란사발/ 예, 님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물론 '산간오지에서 온 원시인 수준' 운운은 참기어려운 표현이긴 합니다만. 최대한 인내하고 말씀드리지요.
그들이 세금을 안낸다면, 세금을 내게 하면 됩니다. 불법체류로 묶어두고 세금안낸다고 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요? 5년이상 한국에서 일하면 정식으로 한국에 정착해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도 지우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국에 부치는 돈, 수십억 달러라도 되나요? 한국이 예전에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가서 부쳐온 돈, 그리고 사우디에 가서 부쳐온 돈, 그런 돈들은 그저 당연한 것이고 이들이 자국 가족들에게 부치는 돈은 10원 한푼도 아까운 것인가요?
님 말대로 해서 한국에서 그들을 다 몰아낸 다음에, 그다음에는 어떡할 건데요? 일할 사람없다고 하면서 불러온 그들 아닌가요? 한국사람들이 그 자리 다 메울 건가요?
님은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님의 문제제기가 충분히 같이 논의해볼만한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님에게서 갈데까지 가버린 인종주의와 후진국 노동자에 대한 멸시만을 느끼는 게 단지 저만의 오버일까요?
당신이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진짜로 같이 일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정체는 당신에게 노출돼있는 반면 당신의 정체는 제가 알 길이 없으니까요. 물론 저는 무란사발님을 가능하면 믿고싶습니다. 그러니 우선 제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현장에서 보시기에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이주노동자들 다 자국으로 추방한 뒤에, 그 다음엔 어쩌실 겁니까? 2004/03/02

무란사발 추방을 걱정하는 것은 누구의 수준으로 보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외국인불법체류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전체를 걱정하고, 아우르는 님의 문제이고, 그들을 고용해야만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용자들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 나라 전체의 경제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의 플로레타리아는 아닙니다.
그저 이 한몸과 나머지 세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님이 정의하는 순수한 노동자입니다. 그렇지요.정확하게 말해서 육체노동자입니다.
어제도 한명이 그만두고, 지난 달 말에는 사무실의 경리아줌마도 그만 두었지요.
그저 자그마한 소기업에 다닐 수 밖에 없는 육체노동자입니다.
진보누리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한국인들과 불법체류노동자들이 반반으로 약 스무명이 됩니다. 우리 공장의 한국인들 진보도 누리도 그렇다고 민주노동당도 모르고, 인터넷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다 입니다.
그저 하루 하루 사장 눈치 보며 연명하는 사람들입니다.
님이야 불법체류자들이 있든지, 없든지, 그들이 얼마를 벌어서 얼마를 모으는지 관계가 없지요. 허나 저같은 경우에는 관계가 있지요.
그들이 있기에 한국사람들이 조금은 일하는 것도 편하고, 임금도 그들보다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서 임금은 항상 저임금이 될 수 밖에 없지요.
무슨 말만 나오면 독일의 간호사나 탄광근로자, 중동의 근로자, 월남전의 소득에 대해서 말하곤 하는 것이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논리인 줄은 압니다.
과거는 그렇다고 치고, 현실을 대입해서 말하겠습니다.
수 만의 한국인들이 일본이나 미국에 밀입국을 해서 불법체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방글라데시인들에게 미국이나 일본처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라고 합니다.
아니올시다. 저의 가족중에 누구도 미국이나 일본에 간 사람은 업습니다.
저는 한국전체를 생각하는 애국자는 아닙니다.
고로, 미국이나 일본에서 불법체류한국인들에 대해서 추방을 하든 구속을 하든 학대를 하든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 불법체류한국인들이 나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입니다.

추방한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럼 영원히 그들을 끌어 안고 살자는 말입니까?
그들이 없으면 한국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없는 선진국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불법외국인들이 필요한 사람들은 저같은 육체노동자가 아닙니다.
일손이 필요하고, 그들의 저임금으로 이익을 보는 사용자들입니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는 더 가난한 나라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불법체류자들이 저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말입니다.

같이 일하는 방글라데시인에게 들은 말이 자기는 전기도 수도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왔다고 하더군요.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그 밑으로 많은 가족이 있다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결혼도 못하고 서른이 넘은 노총각으로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가 우리 사장에게는 필요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 방글라데시인이 있어도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이익보다는 불익이 있으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합법화해서 그들이 공장 전체를 차지하면 우리 사장이야 오피러스를 팔고 에쿠우스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이지요.우리 공장에서 한국사람들이 모두 없어지고, 외국인들로 채워지는 것이 진보누리의 소원이고 님의 소원이라면 할 말 없습니다.

제말은 현실을 너무 감상적으로 판단해서는 수긍을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현실적대안을 제가 마련해야 하나요?
님이 마련해야 하나요?
자연그대로 두면 다 그에 맞게 흘러가는 것이지요.
님의 말대로 국가전체를 생각하고 한국의 경제를 생각하고 사용자들을 생각한다면, 노동자들 저임금으로 국가경쟁력제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보다 저임금의 외국인들을 유입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론적으로는 님이 저를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저는 대학문전에도 가보지 못했고, 하찮은 육체저임금노동자이므로 말입니다.
님의 현란한 문체에 반해서 님의 글을 애독하는 사람이니 필적의 상대는 아니지요.
허나 저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고, <생활>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월급이 1,300,000원인데, 이것저것 떼고 나면 1,200,000원이 조금 못되는 상태입니다. 저의 정체를 더 원한다면 더 알려드리지요. 2004/03/07

예루리 무란사발/ 거의 며칠에 한번 꼴로 쪽글을 주고받는군요. ^^; 이제서야 글을 봤습니다.
예, 님의 말씀을 존중합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이주노동자와 경쟁을 해야하는 한국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란사발님도 그 중 하나라고 하셨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변명을 하나 해야겠습니다.
저는 이주노동자와 생존경쟁을 하는 처지가 아닙니다. 당연히 현장에서 어떻게 느끼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문제인식이 그 이유 때문에 그저 감상적이라 치부될만큼 순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주노동자는 현지노동자들에게 실제로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습니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우익들이 발호하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였고, 한국도 크게 예외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많은 좌파들이 이주노동자의 직종과 현지노동자의 직종이 일치하지않는다는 점을 들어 양자간의 갈등을 무화시키려 시도했습니다. 즉, 이주노동자의 일은 소위 3d직종이 주가 되고, 현지 노동자는 고부가가치 산업에 주로 종사하는 '경향'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경향일 뿐 엄밀한 현실정합성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당장 님과 같은 '예외적 경우'가 나오니까요.
이주노동자 문제를 보는 제 인식은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나온 게 아닙니다. <그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온 것입니다.
노동권이 국적에 의해 차별받는 현실과 국내 노동자의 노동권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이 두가지가 중첩되어 있기에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양자가 충돌할 경우,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 심지어 좌파라는 사람들 조차 자국 노동자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구요. 이는 사민주의 정당이 가지는 한계로 많이들 지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서도 별 다른 묘안은 없지요)
아직 우리는 국민국가라는 테두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마 제가 살아있는 동안 변하지 않는 현실일 겁니다.
저는 이런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지금처럼 자본의 편리에 의해서만 수입되는 이주노동력을 노동의 관점에서 제도화하고 구조화해 나가야하지않을까 하고 느낄 뿐이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국자본을 보호하는 것 만큼이라도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주노동자를 전면 금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입니다. 국가간 경제격차가 있는 한, 이주노동자들의 유랑생활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와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국이 한국과 같이 발전한다면 그 나라 역시 이주노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겠지요.
자국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사회보장이 부족하면 할수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은 커질 것이라고 감히 주장해봅니다. 한국은 수많은 간접세를 뜯어가면서도 사회보장은 열악하기 짝이 없고 오직 자신의 임금수준에만 목숨을 걸어야하는 나라입니다. 재취업과 교육의 기회가 전무한 상황, 그리고 허술한 사회안전망, 허울뿐인 노동법, 이 모든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이주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겁니다. 이런 요구는 당당히 국가에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것들입니다. 국가에 대한 요구를 포기한 대신, 이주노동자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은 중요합니다. 아닌 말로 국적없는 이들의 노동권도 보장받는 나라라면 자국 노동자의 권리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첫술에 배부를 수 없습니다. 무란사발님께서도 같이 고민하고 싸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현실적인 논리로 이주노동자를 경쟁대상으로 보는 것, 물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와 연대해서 싸운 뒤 얻어내는 열매는 결코 이주노동자의 것만을 아닐 것이라 봅니다. 그것이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제가 횡설수설하는 군요. 졸린가봅니다. 이제 자야겠습니다. 대학문전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님의 말은 안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대학물 먹어도 무식하고 무지한 사람 많습니다. 저처럼요.^^
건강하시고, 앞으로 또 얘기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4/03/12

무란사발 님의 친절하고도 이성적인 답글에 저의 패배를 인정합니다.
여러 사이트-서프라이즈,브레이크뉴스,동프라이즈....등등-를 돌아 다니고 눈팅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님처럼 깔끔한 글을 보지 못했기에 진보누리는 자주 아니 거의 매일 저녁 둘러보곤 합니다.
저도 이주노동자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이중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에게 잘해주고 그들의 말을 외워서 그들에게 사용해 보고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점심시간에 운전도 가르쳐주는 친절한 한국인이지만, 어느 순간 내가 한번도 해보지 못한 데모를 한다는 뉴스를 본다든지 하면 저도 모르게 움크리는 자세가 나오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라고 말해도 될겁니다.
왜냐.....저는 이 땅에서 살아야만 하고, 저에게는 딸린 식구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땅의교육으로 세뇌를 당한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그들은 돌아 갈 고국이 있지만, 저는 돌아갈 나라가 없습니다.
죽으나 사나 이 땅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사는 길이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들도 어렵고 우리들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들과 우리를 이용하는 것은 소기업의 사용자들이지요.
이 십명도 안되는 회사의 사장이 오피러스에 하루 근무시간이 한 시간도 안되고, 일주일에 얼굴 몇 번 보기도 어렵고, 아무리 바빠도 공장에서 일 한번 거들지도 않는 회사의 종업원은 고달픕니다.펙스가 사무실로 날아 왔습니다.
골프 치자는 내용이지요.
저요?
당연히 저의 앞이 아니지요.
오피러스주인 앞으로 날아 온 것입니다.
그 골프비를 위해서 하루를 주인의식으로 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인의식을 강요하면서 종업원의식은 없는 회사.
어쩌다 한 번 있는 회식은 생색내면서, 사용자는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사용자를 위해서 우리와 불법체류자들은 돌다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버겁고, 비루해지는 생활이 싫습니다.
이것이 내 자리이고, 그나마 모르고 지내면 좋으련만,문제의식을 발동하는 제 머리가 한스럽습니다.
님의 건투를 빕니다.
저의 딴지걸기가 님의 글생활에 걸림돌이나 브레이크가 되지는 않았는지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렇게 궁시렁거려 봅니다.
<목.구.멍.이.포.도.청>이라서 참고 살아야 하겠지요.
그럼, 이만........... 2004/03/12

예루리 무란사발/ 헉, '패배'라니요, 그리고 제 글생활에 걸림돌이라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굳이 승패를 가려서 뭐에 쓰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무란사발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반성해보는 계기도 됐구요.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진지한 기분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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