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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전시회/ 이주, 뿌리뽑힘과 뿌리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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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친꽃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1건 조회5,865회 작성일2004-07-19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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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의 인간적인, 혹은 비인간적인, 정원 속에서 인간적인 정원
(Ein Garten des Menschlichen)


chohung.jpg
잃어버린 고향, 2채널 DVD 영상, 2002

정헌이 (한성대학교 회화과 부교수, 미술평론)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분명 모국어였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화면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전시장 공간 속에서 다시 한번 섞이고 울리면서 자꾸 흩어져버렸다. 두 화면에는 그 목소리를 시각화한 텍스트가 계속 바뀌어가면서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 텍스트는 독일어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해독할 수가 없었다. 듣지 못하는 청자인 나는 텍스트를 소비하지도 못한 채 일단 이미지만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한편에서는 흙을 파헤치거나, 뭔가를 뽑거나 나르고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이 미디움-롱 샷 정도의 시점에서 별다른 카메라웍 없이 보여지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마도 줌으로 당겨서 찍은 듯한 풀숲을 부유하는 카메라의 시각이 하늘로, 숲 사이로 떠돌고 있었다. 딱히 기록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러티브를 재현하기 위한 것도 아닌 그 비디오 영상들 역시 쉽게 ‘말’이나 ‘의미’에 자기를 내어주지 않았다. 이 서로 교차하고 비껴가는 기표들 속에 닻을 내리기 위해 나는 ‘위치’를 잘 선택하기로 했다. 편법일지도 모르겠으나,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래서 두 목소리 중에서 하나를 선별해서 들을 수 있는 위치를 찾는 것. 딱히 대화라고도 할 수 없고, 혼자 자기 내부에서 자신과 나누는 고독한 독백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렇다고 다수의 관객을 향해 혼자 내뱉는 방백도 아닌 그런 화자의 ‘말’이 비로소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독일 광부모집 이야기를 접한 끝에 독일에 흘러들었던,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궁둥이가 무거워서” 30여년을 그곳에 머무르게 된 한 사내의 삶이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선선히 풀어지고 있었다. 사실 하나의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라기보다는 독일의 광산 기술이 3년동안에 얼마나 발전하던가에 대한 이야기, 시궁창으로 변한 고향의 개울 이야기 등을 왔다갔다 하는 파편적인 이야기이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떠나왔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토록 그리워서 다시 찾았을 때,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고향, 사라져버린 종가집이며, 개울물, 오리숲 등등.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겠다”는 생각과 함께 독일에서 시작된 그의 정원은 그가 잃어버린 고향을 다시 만드는, 자신의 상실을 위로하는 치유의 정원인 셈이다. “독일에 30년을 살아도 어째 머리가 까만채로 그냥 있다”는 그의 유일한 바램은 “친손자만이라도 머리가 까아~만 손자를 안아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화면은 그의 정원 속을 떠돈다. 그가 가꾸어 놓은 갖가지 풀들과 화사한 색의 꽃들이 서로 엉키며 키워낸 수풀 사이로 이리저리 떠돌다 하늘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비행기를 따라가기도 한다. 화면에는 이슬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비를 맞으며, 숲길을 헤메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까만 머리”에 대한 그의 마지막 소망을...

다른 한 화면의 이미지가 비로소 드러난다. 이제 정원사가 된 광부가 그의 정원을 돌보고 있다. 한국에서 씨앗을 가져다 심은 그의 정원은 고향을 대체 보충하고 있지만 이젠 한국 종자만을 특별히 고집하지도 않는다. “꽃들도 가까이 대하다보면 꽃들, 식물들의 성격이나 특성을 알게 되고, 그 특성에 맞게 주변을 만들어주고 싶어져요. 어떤 꽃은 함께 심으면 서로 경쟁하거나 맞질 않아서 자라질 않고, 어떤 것들은 함께 잘 자라고... 저절로 알게 되요.” 그는 구군을 심어놓은 곳을 파서 보여주기도 하고, 잡초를 뽑고, 모종을 옮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원은 잘 정돈된 유럽식 정원은 아니고, 누군가 돌본 듯, 돌보지 않은 듯 풀들이 자유분망하게 엉켜 자라고 있다. 작가는 정원사를 따라다니며 흙을 나르고 삽질을 한다. 정원사를 돕고 있는 대화 상대로 화면에 등장은 하지만 작가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의 시각이나 의도를 전혀 개입시키지 않으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연출되지 않은 일상의 한 풍경을 전해준다. 애써서 의미의 울타리를 치지 않고 한 파독 광부의 말을 최소한의 렌즈 앞에 풀어놓는다. 물론 ‘고향’은 영원불변한 현존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가 기억하는 고향이 진정한 고향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의 기억 속의 고향은 그의 이후의 삶 속에서, 즉 독일에의 이주 후에 객지 생활 속에서 회상되며 만들어진 고향일 터이다. 독일 땅에 만든 그의 정원은 고향을 보충하고 대리한다. 망실된 고향은 그의 정원 속에서 복원을 꿈꾸지만 그것도 어찌보면 부질없고 어찌보면 불가능하다. 고향은 다른 곳에 있다. 그 고향은 시각적으로 재현될 수 없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시간과 기억의 시간은 두 개의 화면에 각각 나뉘어 담겨 있다. 정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담은 화면이 현실의 보충 고향이라면, 다른 곳에 있는 고향은 수풀 속을 부유하는 카메라에 잡힌 초록, 빨강, 노랑, 파랑... 그 거의 추상화같은 색채 사이로, 그리고 부슬부슬 내리는 눈물같은 빗줄기 사이로 아른아른 흔적을 남긴다.

“뿌리뽑힘”은 사실 근대적 경험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이든, 한국에서 독일로든 간에, “뿌리뽑히고” “고향을 잃어버리고” “낯선 곳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에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근대적 디아스포라(Diaspora)인 것이다. 그런데 백기영이 이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는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이주 이상의 것이다. 낯선 곳에 자신의 정원을 복원하고 있는 정원사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뿌리뽑힘”과 더불어 “뿌리내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는 이 “뿌리뽑힘/뿌리내림”의 근대적 경험을 한 개인의 개인사를 넘어서는 생태학적 산종(散種)의 차원으로까지 전이시킨다.

학생이었다가, 광부였다가,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게되어 일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이도 생기고 해서 먹고 살려고 애쓰다보니 어떻게 낯선 곳에서 30여년을 눌러살게 된 한 정원사에게 정원일을 배운(?) 작가는 자신의 정원을 실험한다. 백기영의 사진작업은 그가 뮌스터 정원협회의 한 독일 할머니의 정원을 빌려서 22 종류의 한국 씨앗을 뿌려 기록한 정원사진이다. 씨앗을 뿌리고 최소한의 생존조건만을 갖추어 주고는 잡초도 뽑지 않고 마음대로 자라게 내버려둔 정원을 3개월에 걸쳐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그의 비디오 작업이 테크닉을 극소화하여 기록적인 기능 이상의 형식적 기교를 배제하였듯이, 그의 사진도 얼핏 보기에는 사진적인 별다른 테크닉을 구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까스로 피어난 꽃들이 시든 가지 사이로, 잡초들과 함께 뒤엉켜있다.

이 기록 사진이 마치 야수파나 독일 표현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듯이 색채가 화려하고 선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진이 관상용이 아니라 생태학적 목적을 갖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생태학적 목적”이란 아마도 그의 작품의 의미 차원을 지시하는 말 같다. 이산(diaspora)은 산종(dissemination)의 문제로 대체된다. 이산의 시대에는 정체성의 고민이 있었지만 산종의 시대는 이미 정체성을 고민할 수 없는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우리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까맣지 않은 것이다. 자기 종자를 확인할 길이 없기에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젠 고향은,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이 환영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위치’가 문제가 된다. 백기영의 이번 전시「인간적인 정원 (Ein Garten des Menschlichen)」은 “독일에 살고있는 한국인으로서 그가 제작한 마지막 작품”으로 독일에서 먼저 발표된 작품이며 일단 독일의 관객을 향해 발표된 작품이었다. ‘인사이더’들에게 ‘아웃사이더’로서 ‘아웃사이더’의 생태학을 시각적으로 재현하여 보여주는 그의 작업은 강력한 발언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의미 차원에서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인사이더’들에게는 ‘아웃사이더’는 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만한 제 3자이기도 하다. 이제 ‘인사이더’ 작가로서 국내 미술계에서 그의 ‘생태학적 관점’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 호기심이 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형식적 기교를 배제하고(탈 형식주의?), 의미 차원을 작가가 주입하여 계몽적으로 강요하지 않는(탈 내용주의?) 그의 작업의 냉정한 설득력은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짐짓 다큐멘터리적인 표상들이 과연 정체성의 문제를 그냥 덮어버리고 표현주의적으로 산종될 것인지, 아니면, 존재에 대한 믿음이랄까, 뭔가 ‘우리’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해당하는 것을 계속 생태학적으로 추구해갈지 궁금해진다. 독일에서야 그저 배경 음향이었을 터이고 그것이 번역된 텍스트로 “읽혀졌을” 한 파독 광부의 ‘목소리’는 어차피 청취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일어로 번역된 자막 텍스트는 ‘여기’서는 읽혀지지 않고, 그의 목소리는 두 개의 화면, 현재와 과거, 혹은 실제 세계의 내면 세계, 작업의 대상과 작가의 시각으로서의 두 화면 사이로 흩어진다. ‘여기’서 이현규 씨는 더 소통되기 어렵다. 그는 ‘타자의 타자’로서의 또하나의 기표, 말하자면 “까만 머리”같은, 다의적이면서도 텅 비어있는 기호는 아닌지.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억지로 ‘기의’를 재현하기보다는 그의 카메라로 그저 꽃들과 수풀들 사이를 비를 맞으며 헤메었는지도 모르겠다.

정헌이 (한성대학교 회화과 부교수,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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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꽃님의 댓글

미친꽃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전시회는 끝난 거 같아요. 다만, 이주를 주제로 하고 있어서 퍼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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