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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은 통과의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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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2건 조회4,531회 작성일2004-07-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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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닉 맑시즘적인 착오를 범하고 있군요. 결국 매닉 또한 생산력론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있었던 논쟁이자 맑스를 고민으로 몰아 넣었던 논쟁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맑스의 만년에 러시아의 혁명가들이 맑스를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하더군요. 과연 러시아 처럼 생산력이 낮은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과연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에 대해서 맑스는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엥겔스는 여전히 사민주의적인 방식으로의길을 모색햤던 것 같고요. 카우츠키와 플라하노프 역시 이러한 엥겔스의 길을 따라 던 듯 합니다. 단지 레닌과 트로츠키 만이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지요. 이른 바 약한고리론이라는 것을 매닉 또한 잘 알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어째거나 인구의 90%가 농민인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만들어 지고야 말았지요. 그리고 레닌은 급격한 국유화를 시작하였나 봅니다. 그리고 레닌은 포디즘에 대한 사회주의적 이용가능성과 집단적인 생산의 전망을 내놓을 뿐 아니라 컨베이어 시스템을 대거 도입했나 봅니다. 화폐관계는 잠깐 폐지 되었다가 다시 복구 되었나 보고요. 그리고 생필품에 대한 배급경제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멸령경제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전국적 단위의 생산 소비 교환 분배 관계에서의 러시아 공산당은 무소불위의 권위와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또한 잘 아실 것이리라고 봅니다. 자 러시아는 다른 길을 갔지요. 관료 독점의 길 말이지요. 그리고 이 관료들은 근대화를 서구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았난 봅니다. 이 방식은 제3세계 국가 즉 개발 도상국가가 공통적으로 취한 방식 즉 국가 주도형의 개발론으로 안착되기 시작했지요. 물론 이 과정에서의 부패는 만연한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러시아에서 또한 관료의 부패는 똑 같은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점에서 이 관료들의 부패와 공산당의 이념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는 마지막 케인즈주의의 개발 독재의 시험장이라고 하는 중국 관료 들의 부패상을 보면 쉽게 이해되시리라고 봅니다. 이들 제3세계의 주변부 국가 종속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 혹은 약한 고리에 걸려 있는 국가들은 공히 중화학 공업 우선 정책과 군비 강화정책을 쓴것 또한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북한의 강성대국이라는 구호는 이러한 구사회주의권의 관료들의 의지를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자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과연 산업화가 안되었다면 그것이 필연적인 통과의례라는 당대의 생산력론이라는 시각을 넘어 섰다면 과연 러시아등의 민중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였을까. 그것인 브레즈네프 체제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나서 고르바초프에게서 터 져 나옵니다. 인류의 공동의 과제를 당파성 보다 우선시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기후 온난화 숲의 파괴 등의 생태 환경의 문제를 당파성 보다 우선시 하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라는 사회정의의 구현이라는 공동의 과제를 우선시 한다는 선언으로 외현되기도 하였지요. 마르크스가 만년에 미르라는 러시아의농업 공동체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매닉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봅니다. 과연 러시아가 국가 관료 당관료 중심의 사회주의 종주국을 향한 혹은 사회주의적 패권주의를 향한 근대화 산업화를 하지 않고 미르 식의 공동체적 발전과 지금의 생태 공동체적인 발전의 길을 갔다면 하는 역사적인 가정을 들어 봅시다. 지나친 권력과 생산수단에의 국가 독점의 길이 아닌 지역의 자립 기반의 강화민 소비에트 연방 내의 모든 민족의 자립 기반의 강화 쪽으로 길을 걸어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에서의 이러한 시도가 있었던 듯 합니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은 다른 형태의 개발주의 성장지상주의의 길을 가고 있으며 세계의 패권을 향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동북 공정은 이러한중국 공산당의 야심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고 티벳 문제나 대만문제 신장의 문제 등등은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야심을 보여주고 잇는데 러시아 공산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북한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 시도는 유로 꼬뮤니즘인데 이른바 68 혁명의 공장 점거 운동 풀뿌리 자치 운동 지역 공동체 운동 탈국가적이자 탈 자본주의적이니 자립 자치의 운동 등등을 들수가 있고요. 그 다음 이러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인도이 소공동체들 ,일본 유럽등지의 소 공동체운동들 ,그리고 사파티스타라고 하는 자립 자치를 지향하는 인디오 공동체 운동들, 한국의 두레마을 가나안 농군학교들의 공동체운동 녹색대학  한녹 복구회 한살림등의 생태 공동체 운동들, 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운동들은 전반적으로 근대화 성장과 개발 독재라는 생산력 우선주의적인 등소평과 스탈린의 태도를 극복한 운동들이며 이른바 근본 생태주의 심층 생태주의적인 운동들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겠지요.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러한 운동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 같지요.

각설하고 근대성은 통과의례가 아니다라는 점은 맑스이 자본론에서의 원시적 축적 본원적인 축적이라는 챕터만 보셔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핸리 5세의 유민법이라는 폭력적인 입법의 결과이며 엔클로져라는 자본의 폭력적인  방식의 결과이자 일본의 식민지에서의 곡물 수탈이라는 폭력적이 수탈의 결과이지 절대 목가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아실 것이리라고 봅니다. 이것은 경제 외적 강제로 부터 경제 내적 강제로의 전화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슬럼은 근대화의 결과이지 애초부터 슬럼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아니지요. 이 과정에서는 소농 혹은 채집 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소외와 열등감의 조장이라는 기독교과 근대 교육 및 미디어의 선동의 결과라는 것 또한 잘 아실 것입니다.

매닉 또 하나는 생태적으로만 봐도 근대화는 통과의뢰이다라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 발상이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정당화 시키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니다. 러시아와 똑같이 식민지 국가는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 할때까지 제국주의의 수탈이라는 지옥을 견뎌야 한다는 맨새비키류의 오류에 빠지고 마는 것이기도하지요. 붕면 공동체적 자립의 길이나 농업 기반으 강화와 경공업 생필품 위주의 자립적 발전의 갈과 가내수공업 및 소농 기반의 경제발전 전략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포기로 다가 오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들 작은 것들은 아래로 부터의 전통적인 상호부조의 경제 사회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천 년 동안 이어온 바로 이러한 경제 사회적인 공조의 시스템을 깬 것이 서구자본주의라는 것은 이미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들어 났고 네루의 세계사 편력에서 또한 뱅갈 문제를 이야기 한 부분에서도 나옵니다. 그것은 간디의 스와힐리 운동의 이론적인 정식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봐야 할 듯하고 이는 비동맹국가 라는 수평적인 국제연대의 결과로 나타 나기도 하였답니다.

매닉의 통과의례라는 근대화에 대한 숙명론은 정부로 들어 가자 마자 곧바로 자본의 먹이가 되어 버린 낼슨 만댈라와  룰라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국가 단위의 운동 보다는 지역 공동체 단위의 꼬뮨적인 지향성 대항 국가나 대안 국가적인 지역 공동체적인 발상으로 부터 출발하여야 하며 이것은 곧 바로 꼬뮨적인 체제나 시스템으로 전화하지 않고서는 싶게 자본의 먹이가 될 것이며 다수의 미시적 저항단위의  수평적인 연대라는 공동체적인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고 이것은 공동체를 향한 게릴라적인 길 기동전이라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 각성되 다중이지요.
그러니 꼬뮨을 향한 투쟁은 자치투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경제투쟁에서 단련되 부위들은 빠르게 이 다수의 자치 투쟁의 단위로의 결합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와 외국노동자간의 구분은 없어 진다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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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님의 댓글

.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자동차만 해도 그래요. 사람마다 자기 자동차 가지고 사는 생활이라는 건 생각해보면 이만 저만 미치광이 짓이 아닌데, 이게 당연시되는 상황이 얼마나 더 가겠어요. 이런 점에서 당장 걱정은 중국의 경제발전입니다. 중국의 그 수많은 인구가 자동차 중독증에 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지구는 그날로 끝장이 아닐까요. 청정에너지 따위로 대응해 보겠다고 하겠지만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이젠 이북도 산업화를 본격화해 볼 모양인데, 참으로 심란스럽습니다. 이러다가 큰 재앙이 닥칠 거라고들 하지만, 사실상 지금 당장 여기가 지옥이 아니고 뭡니까. 언론에서는 쓰레기를 불법매립했다고 고발도 하고, 환경에 관심있는 척하지만, 따지고 보면 불법매립과 합법매립의 차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환경당국의 규정에 유독물질을 버릴 때 침출수가 새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영원히 새지 않게 하는 방법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핵폐기물을 버릴 데가 없는 것처럼, 모든 다른 유독성 쓰레기도 버릴 데가 없는 겁니다.

.님의 댓글

.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紅人)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그는 인류의 미래가 있으려면 땅을 필요한 물자를 얻고 이용하는 관점이 아니라, 땅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영성적인 문화가 보편적인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문화를 토대로 할 때 근본적으로 농업이 중심이 된 순환적인 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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