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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말 타파 강제출국 당한 날,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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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쇼르쑈띠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조회5,355회 작성일2004-04-0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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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단의 마임팀은, 여수로 향하던 길이었다. 4월 1일은 원래 샤말 타파 후원 주점이 열릴 예정이었다. 농성단에서는 마임팀인 이주동지들을 중심으로 몇 명과 한국동지들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우리 모임에서는 마님이 가기로 했다. 마님은 하루 더 머무르며 샤말을 면회할 예정이었다. 나는, 이미 전에 샤말을 한번 보았고, 또다시 보러 가는 마님을 부러워만 하고 있었다.

여수로 향하는 봉고차가 출발한 시각은 새벽 여섯 시. 샤말에게서 ‘지금 인천공항이다, 9시 비행기에 태워질 것 같다’는 전화가 온 것은 일곱시 반경이었다고 한다. 여수행팀은 급히 찻머리를 돌려 명동으로 돌아왔다. 서울에 있던 한국활동가 중 몇 명은 이 소식에 혼비백산해 급히 인천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샤말은 네팔까지 그를 호위(인지 감시인지)할 출입국관리소 직원들과 함께 9시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는 이미 이륙한 후였다.

감기몸살로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던 나는,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일어나 늦은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님과 농성단의 민수 동지가 내게 일곱시 반부터 전화를 했지만 나는 벨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마침내 통화가 되고 나는 출근도, 집에서 몸조리를 하는 것도 포기했다.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깨철님, 금자씨, 달래님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모두들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황망한 감정은 나도 이주동지들도 다른 한국 연대동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았다.

점심을 먹고 두 시부터 집회를 시작했다. 시립대와 고대 학생들, 노동해방학생연대 몇 명이 오긴 했지만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법무부를 규탄한다. 법무부를 규탄한다. 법무부를 규탄한다. 추악한 것들에게 노무현이 탄핵당한 지금은 노무현을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칠 수도 없다.

노래공장의 두 동지가 노래를 부르고, 연영석 씨도 노래를 불렀다.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서 화장실에 잠시 다녀왔다. 오늘따라 팔뚝질을 하는 내 팔엔 분노 때문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오늘 낮집회 때, 수많은 이주동지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집회를 마치고 명동거리에서 선전전을 했다. 명동성당 입구 명동거리에서 이주동지들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서서 구호를 외쳤다. 나는 선전물을 받아들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돌렸다. 내가 서 있던 곳 가까운 곳에서는 탄핵규탄 선전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주동지들과 이들에 연대하는 한국동지들이 당연히 자기들을 지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탄핵반대집회팀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강제추방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극악하게 이루어졌고, 명동성당 농성팀이 꾸려진 것도 노무현 정권 하였는데...

선전전을 끝내고 세 시쯤 다시 명동성당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농성장 선주 동지에게 화성보호소에 있는 굽타 동지가 전화를 걸어서 ‘깨비, 굽타 동지에게 짐싸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샤말 강제출국의 충격이 여전히 크게 남아있는데 깨비, 굽타 동지도... 몇몇 군데에 전화를 돌렸다. 도무지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근처 커피숍에서 깨철님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여섯 시가 조금 넘어 농성장으로 다시 갔다. 저녁식사를 하고 텐트 안에 잠시 앉아있다가, 7시가 되어 다시 집회를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 하나에 세 사람씩, 혹은 몇몇은 우비를 입고, 그렇게 집회를 시작했다. 여전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주동지들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컸고, 팔뚝질에는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모두들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고, 구호를 외쳤다. 그 비가 오는 가운데 마임팀 전태일은 우비를 입고 마임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절도 있고 엄청난 공연. 눈물로 얼룩진 집회를 끝내고 슬픔이 한 차례 지나고 나자, 분노의 힘이 솟아오른 것이다. 이주동지들과 우리들은 심장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오는 힘 때문에 어쩔 줄 몰랐다.

7시가 조금 넘어서, 샤말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홍콩이라고. 특유의 웃는 목소리로 실실 웃으며 오히려 다른 동지들의 안부를 묻더라나. 그리고 나는 이제 편한 생활 시작이야, 그런데 당신들은 계속 투쟁해야 돼, 라고 농담을 하더라나.

그는 다른 동지들이 걱정할까봐, 그리고 자신에 대해 걱정시키는 게 미안해서, 그렇게 웃는 사람이다. 연행되고 나서도 그는 일부러 실실 웃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서 겸연쩍게 미안하다고 해서 다른 동지들을 오히려 미안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농성투쟁 100일 때에도, 연대의 밤 주점행사 때에도, 그는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도리어 농성단의 다른 동지들을 걱정했었다. 잠시 스쳐지나간 연대하는 한국동지들에게,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연대해줘 고맙다고 꼼꼼히 챙기던 사람이었다. 농성단의 단 둘인 여자 동지들을 유난히 잘 배려하고 챙겨주며, 다른 동지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던 사람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눈물이 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힘을 모아 싸울 것이다. 분노는 나의 힘이다. 우리는 밟을수록 일어난다. 밟을수록 일어나며 분노가 커진다. 그리고 분노가 커질수록 강해진다. ‘적들의 총칼 가로막아도 우리는 기필고 갈’ 것이다. 어차피 노동자가 가진 재산이란 몸뚱아리 하나뿐이며, 노동자의 길이란 단결투쟁뿐이며, 노동자의 무기란 연대투쟁뿐이다.


일정:
내일(4월 2일) 11시, 기자회견. 법무부, 국가인권위원회 항의방문
일요일(4월 4일) 1시, 청량리역에서 집회.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투쟁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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