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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님] 아름다운 사람, 샤말 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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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님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조회7,504회 작성일2004-04-0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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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실의 불이 켜졌다. 이야기가 오가는,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 유리창이 보였다. 유리창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창의 안과 바깥에는 가느다란 쇠창살이 놓여 있었다. 이내 한 청년이 나타났다. 삭발 후 다듬지 못했는지 삐쭉삐쭉 자라난 그의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반가움의 미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샤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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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전 샤말의 모습.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명동성당에서 농성 30일째에 접어들었을 때 찍은 것이다.]


마음이 급했는지 명동성당의 농성단 사람들이 전해달라는 소식들을 나는 빠른 속도로 샤말에게 전했다. 혹시 내 말이 너무 빨라 샤말이 제대로 듣지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자 샤말은 더욱 환하게 웃음지었다. 농성장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샤말의 미소를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샤말을 잘 모른다. 그가 명동성당에 있을 동안 그의 발언을 들었지만 나는 그와 제대로 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다. 샤말은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또 나는 아직 농성장의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기 전이었으니까. 하지만 샤말이 여수로 납치된 후 농성장의 많은 친구들은 나에게 샤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샤말은, '착한 사람'이었다. 나는 신기했다.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란, 대개 중책에 어깨 눌린 탓에 개인의 허물이 쉽게 드러나는 법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평가란 공적으로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사적으로는 다소 이견을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농성장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샤말이 착한 사람이라 말했다. 과연 샤말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샤말의 면회를 담당하고 있는 캐쉬씨가 나에게 말을 한다. "제발 자기는 괜찮다고 말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캐쉬씨의 말에 이어 나는 샤말에게 말했다. "샤말 몸은 샤말 게 아니에요. 샤말 몸은 우리 동지들 거에요. 그러니까 어디가 안 좋으면 언제든 바로바로 얘기해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함께 대처할 수 있어요." 샤말은 쑥스러운 듯 수줍게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농성장 동지들에게 들은 샤말은 그런 사람이다. 힘들 때 이야기 나누었던 친구, 때로는 오빠 같고 때로는 동생 같은 동지, 항상 웃고 지내는 사람. 농성장의 친구 소하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 오빠(남자친구)가 샤말보다 더 잘생겼잖아요. 하지만 오빠보다 샤말이 내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줬어요. 그래서 샤말은 오빠보다 더 친한 부분이 있었죠. 나뿐만 아니라 다른 농성장 사람들 이야기도 샤말이 제일 많이 들어줬을 거에요. 그래서 인기도 많았어요. 물론 샤말이 너무 잘하니까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요." 내 귀에 들려오진 않았지만, 역시 그에게도 애정 어린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긴 했나 보다.

평등노조 이주지부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대표,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전면합법화를 주장하며 농성에 들어간 투쟁단의 대표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는 샤말은, 네팔에서 아이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다 한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선명한 표현들을 보자면, 문학이나 예술보다는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이 더 잘 어울릴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선명함들은 따뜻한 미소와 다정다감한 성품과 어우러져 더욱 두드러졌던 건 아닐까.

현재 네팔은 내전중이다. 농성단의 네팔 이주노동자 한 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팔 끌려가면, 노동운동한 거 정부에서 알면, 우린 죽어요." 네팔에서의 노동조합은 반국가단체이다. 죽음을 각오해야만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한 한국 정부이기에 허가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출국시키면서 정부는 그들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 비두가 그러했고 자말이 그러했다. (다행스럽게도 비두와 자말은 네팔보다 상황이 나은 방글라데시 출신이었기에 극단적인 처분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비두와 자말 역시 방글라데시에 도착하자마자 강제구금되었고, 현재까지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 게다가 며칠 전 화성보호소에는 몽골인 2명, 러시아인 1명에 이어 다시 단식을 함께했던 바라쉬 동지를 포함한 몽골인 4명이 강제출국되었다. 몸 상태가 나빠지면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하는 보호소측은 언제든 그들을 내쫓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 샤말, 깨비, 굽다, 헉 동지가 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싸움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샤말은 씩씩하게 말했다. "괴롭고 힘들지만 싸워야 해요. 싸워야 얻을 수 있어요." 아슬아슬한 벼랑끝에 서 있는 샤말은 노래 가사처럼 '투쟁 속에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화성 보호소의 동지들, 명동성당의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농성투쟁단 동지들 역시 함께 단식을 하며 함께 투쟁하고 있다.

샤말이 잡혀간 후, 농성단의 집회에서는 "우리는 샤말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곤 했다. 머나먼 땅 한국에 들어와 플라스틱 사출기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 또 공장을 옮겨 유리문 새시를 만드는 공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청년, 때론 우리 집 근방에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청년(실제로 샤말은 우리 집 근방에 자주 놀러오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말 말하지 않으면, 앞서서 싸우지 않으면, 우리를 위해주는 누구도 없다고 배웠"다는 청년,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움을 시작한 청년. 샤말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그리고 명동성당 농성단의 마임팀 이름이기도 한, 또 다른 우리의 '전태일'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가 전태일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와 닮은 노동자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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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보호소에 잡혀간 후, 농성장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이다.
색연필로, 현재 샤말이 있는 보호소 내부를 그려보냈다.
샤말 옆에 누워 있는 분은 샤말과 함께 방을 쓰고 있는 중국 이주노동자이다.]


서울로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을 즈음, 샤말에게 전화가 왔다. 면회를 하면서 연대하고 있는 학생 동지들에게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일일히 안부를 물었던 샤말은, 여수에서 샤말의 면회를 맡고 있는 동지에게 물어 나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무사히 잘 서울 도착했어요?" 샤말의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다. 샤말은 그렇게, 나와, 여타의 동지들과 여전히 함께 서로를 다독이며 나아가고 있었다. 때늦은 3월, 펑펑 쏟아지는 눈 때문에 밝아진 세상 만큼이나 샤말은 그렇게 밝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



p.s. 지금 나오는 음악은, 집회 때마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부르곤 하는 단결투쟁가이다. 샤말이 무척 보고 싶다 말했던,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장에서 자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ZEN 친구들이 부른 버전이다.


* S.C.D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4-09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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