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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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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회당 토게펌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1건 조회5,054회 작성일2004-04-2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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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 토론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당..글의 내용중에 제가 볼드로 강조한 부분이 무슨 내용일까요..?? 잘 이해가 가질 않네여...>



당을 옹호함.


데이모스 04-26 11:36 | HIT : 208



당이 의회주의 정당일지라도 지역적인 대중의 공동체보다 훨씬 중요하며, 수평적 네트워크의 '불분명한 계약주의'보다 훨씬 진보된 것이다. 녹색주의가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시장의 합리화, 사회민주주의의 종별적 유형에 하나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자본의 세계화에 내장된 문제, 자본의 이동을 위한 전제적 조건들, 유통을 결정하는 불변자본들의 이동은 공간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란 노동력의 재생산조건을 감안하지 않는 이상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한 재생산 조건의 비용이 들어있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의 비용이 즉각적으로는 자본의 부담을 덜어줄지 모르겠지만, 정기적인 이동을 결정할 수 있는 엄청난 사회 교통 기반들의 투자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속철에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하되었는지 보지 않았던가.

나는 이런 사회간접자본(SOC)의 형태들이 민족/국가를 신자유주의시대에도 필요불가결하게 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즉, 국가의 권력은 텅비어있는 신자유주의의 센터가 아니며, 새로운 종속의 구조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를 향한 권력투쟁의 수단으로서 당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점에서 모든 평의회주의들은 의회민주주의를 정면돌파하기보다는 뛰어넘고자 하는 몽상가로 간주한다.

물론 의회적 당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 제한과 한계가 대중속에 각인되고 대중속에 그를 대체할 대항의 권력이 형성되는 운동들이 전국적으로 증폭되기 위해서는 그를 지도할 대중적 전위, 대중적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을 당이라 부른다. 그것에 특정한 브랜드가 붙어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당들은 그들 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자체의 역사적 사변들과 함께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제한조건조차 없는 순수한 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거나 사회당에서 활동하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 민주노동당에서의 활동이 더이상 불가능하거나 혹은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모두 이루어졌다면 사회당에서 활동하는 것도 권할만한 일이다. 반면 사회당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 자신의 바램을 조직하는 것이 어렵다고 간주한다면 민주노동당에 가입하여 그 조건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는 지금에 있어서 모든 당들을 옹호한다. 적어도 시장의 질서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 그러면서도 반동적 독점으로 퇴행하지 않으며, 경쟁 자본주의라는 환각속에 빠지지 않는 모든 시도들을 지지한다. 그러한 시도들이 당적인 질서와 당적인 결합속에 진행되기를 바란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도들과의 명백한 정치적 관계를 정립하고 대중속에서의 혁명적 활동을 시도하고 추진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당은 이 시대를 넘어서는 절대절명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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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로도스님의 댓글

로도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아는 한에서 설명해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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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인, "노동력의 재생산 조건"만 이해하면 될 것 같군요. 쉽게 예를들자면, 한 노동자가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도 일하러 나갈 수 있는 상태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회복/준비되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차세대 노동력의 원천인 자녀를 출산/양육하는 것도 포함될 테고 하여튼 노동자가 지속적인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유무형의 조건을 "노동력의 재생산 조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데, "재생산 조건의 비용이 안드는 이주 노동자"라고 했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안드는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것이라 해야 맞겠죠. 한 나라 혹은 사회마다 고유의 역사문화적 전통으로 인해 노동력의 재생산 조건은 다릅니다. 보통은 경제적 차이에 의한 것이 많지만(왜냐하면 각종 자본화한 담론들에 의한 간섭현상이 심하므로) 남부 유렵의 시에스타나 이슬람 문화권의 정례적인 기도 시간 등등 문화적인 것들 또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다음날 일하러 나가기 위해서 적어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에는 고기에 포도주를 먹고 주말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것이 한 사회의 상식인 사회에서의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은 먹고 재워만 주면 일한다는 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높겠지요.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 비용차이를 이윤화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데이모스는 그것이 잠정적인 효과만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지요? 자본들 간의 무한 경쟁을 통한 사회적 평균 이윤율의 끊임없는 재조정을 통해서 위와 같은 특수이윤은 단기적으로만 유효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회간접자본을 비롯한 사회적 비용을 통해서 응당의 댓가를 지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한 자본이  누리게 되는 특수이윤의 유효 기간을 여러가지 잔머리를 통해서 연장하고자 한다는 것이며 그 사회적 비용을 자신들이 아닌 민중들을 통해서 벌충하고자 한다는 것일 겁니다.

설명이 더 복잡했던 것 같네요. ^^;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란 노동력의 재생산조건을 감안하지 않는 이상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한 재생산 조건의 비용이 들어있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의 비용이 즉각적으로는 자본의 부담을 덜어줄지 모르겠지만, 정기적인 이동을 결정할 수 있는 엄청난 사회 교통 기반들의 투자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뭐,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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