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디온의 글]목화씨를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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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매닉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2건 조회8,985회 작성일2006-05-07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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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씨에 붙어있던 솜들을 물에 불려 떼어내면서 오늘 오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걱정과 염려 덕분에, 연행되어 유치장에 있을 때에도
몸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가 나왔습니다.
저는 5월 4일 오전 11시 50분경,
대추초등학교 앞 연좌시위하는 곳에 앉아 있다가
여경과 용역깡패에 의해 팔 다리가 들려 연행되었습니다.
연좌에 참여하지 않고 계속 상황을 주시하면서 모든 과정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었는데
전경들이 마늘밭을 짓밟고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작년 11월에 심어서 지난 3월에 싹이 올라왔고, 이제 30센티쯤 자란 것들.
그것은 여기 계신 분들의 시간과 마음이 모두 담긴, 그 자체로 대추리의 삶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곳의 모든 것이,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정성과 손길이 닿은 것이라
하나 하나 소중한 것인데
전경들, 사복경찰들, 용역깡패들에게 그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 울면서 소리도 질렀지요.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원정 3거리까지 봉고차에 실려 갈 때,
나를 보는 전경들 하나 하나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모두들 괴롭고 힘든 얼굴들이었지요.
덥고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오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 이것은 정말 비극이구나, 가슴이 아파 실려가는 중에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닭장차'에 실려있을 때,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더위와 배고픔과 피로에 지쳐 힘들어했습니다.
경찰들은, 그 차에 15명을 채워야 한다, 20명을 채워야 한다, 나중에는 30명을 채워야 한다면서 시간을 보냈고,
땡볕에 밥도 못먹고 4시간 이상을 버스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있었습니다.
전날 잠을 못자서일 수도 있고, 아무튼, 가끔씩 정신을 놓치고 다시 깨어나고
또 놓치고 하면서 오후 5시가 넘어서 안산경찰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막상 경찰서에 가니, 저를 맡은 경찰은 친절하게 이것 저것 배려를 잘 해주었습니다만,
마음은 한없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제가 잡혀갈 당시, 이미 대추 초등학교 안으로 전경들이 새까맣게 밀고 들어간 상황이었고,
지붕위에 신부님들과 몇몇 사람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학교에는 사람들이 계속 있는지,
촛불집회는 계속 하고 있는지,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다친 사람은 없는지 등을 모두 알 수 없었으니까요.

조사를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넘었고, 유치장 안에는 11시가 다 되어 들어갔는데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엔, 더욱더 답답했지요.
문 신부님께서 지붕에서 내려오시면서, 연행자들 불구속하기로 협상했다는 소리를 들었고,
임종인 국회의원도 올라갔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도대체 사람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주민들, 지킴이들, 함께 했던 동지들 얼굴 하나 하나 떠오르면서
얼른 나가서 다시 꼭 봐야지 하였습니다.
날마다 일하던 들녘은 어찌 되었을지,
논에 물은 대고 있는지,
내가 심은 허브들과 콩과 감자는 잘 자라고 있는지,
날마다 들고 나르던 비료푸대와 종자푸대를 당장이라도 번쩍 들고
흙을 밟고 싶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게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과 사람이 모두 날 깨우치는 스승이요, 날 품어주는 님이신데.

한나절 졸며 책보며 걱정하며 지내다가 밤이 되었는데,
같이 연행되어온 사람들 중 하나가 뉴스를 보게 MBC를 틀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여경은 무엇이 두려웠는지, "뉴스는 안되요."하면서 쟁반 노래방 같은 유선을 트는 것이었지요.
사람들은 실소하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규정이 어쩌고 하다가, 텔레비전을 꺼버리더군요.
그러자 사람들이 철창으로 모여들며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고
나란히 붙어있는 4개의 유치장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소리를 질렀지요.
국민을 바보로 아냐, 왜 뉴스만 안되냐, 규정이 도대체 정확히 어떻게 되어 있냐 하면서..
결국 우리는 뉴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철조망을 끊고 논으로 들어가는 모습에선 여기 저기서 작게 함성을 터뜨렸지만
초등학교 앞에 우리들의 저항의 상징이었던 갑오농민전쟁 동상이 옮겨지는 것을 보고 우린 철창을 붙잡고 한탄하고 가슴을 쳤지요.
상황에 대해 알기에는 턱없이 짧고 모자란 뉴스.
무엇이 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없는 짧막한 보도.
그리고 팽성에 대한 부분이 끝나자,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가만히 앉거나 눕거나 하였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의 즐거운 풍경을 담은 소식들이 이어 나왔지만,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았지요. 저는 제 자리에 돌아와 모포를 깔고 누워
조용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네.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그 때, 연행되기 전에,
연행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시위대 안으로 들어간 내 행동의 덧없음에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쯤, 대추리 도두2리에서는 얼마나 지독한 고독과 불안 속에서 이 밤을 보내고 있을까.
사람이 귀하고, 사람이 전부인 이 싸움에서,
단 한 사람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제 자신이 너무나 밉고 저의 행동이 후회스러웠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밤은 정말이지 끔찍한 인간사냥의 밤이었고
그 밤에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가슴엔 지울 수 없는 공포가 새겨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연행되었고, 영농단에서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던 사람들은
군에 의해 포승줄이 채워진채로 바닥에 끌려 사라졌다지요.
전쟁 포로를 잡아갈 때 쓰는 방식대로,
바닥에 사람을 엎드리게 한 다음, 두 팔을 뒤로 꺾어 묵고,
무릎을 또 꺾어 묶어, 번쩍 들고 가지도 않고 흙바닥에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날 밤에
저는 너무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연행을 대비해 돈도 두둑히 주머니에 챙겼으므로
사식을 사서 사람들과 나눠먹고,
잘 지내다가 나왔습니다.
안산경찰서에서 5월 6일 오전 11시 40분에 풀려나왔고,
같이 연행되었던 사람들과 인사 나누었고요.
다들 자기 갈 길로 삼삼오오 흩어진 자리에 서서
조금 고민을 하다가,
밥을 사먹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평택으로 다시 왔습니다.

부서진 대추초등학교를 두 눈으로 보고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통이 멍 하던 것이
이제 하루 지나고, 쉬고 나니 그냥 그렇구나 싶은 정도로 마음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어젯밤엔 좀 불안했지만,
오늘은 또 아침 일찍 눈을 번쩍 뜨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땅이 질퍽거리는 것이, 아주 작물들에겐 단비가 되었겠다 싶었지요.
이제는, 상추와 치커리와 쑥갓이 서로 분별이 될만치 커서
아주 볼만 하고요.
밭 가장자리에 정체를 알 수 없던 나무는 연초록 매실을 달고 있고요,
콩과 감자는 청녹색 잎파리를 싱싱히 피워올렸습니다.
제가 심은 허브 중에 특히 민트 종류들은 제 세상 만난듯이 푸르고 힘을 받았고요
쌈거리들은 잎사귀가 뽀드득 거릴 정도로 튼튼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다만, 밭에서 내려다보면 가슴이 탁 트이던 들녘엔, 새까만 벌레들이 가득 꼬여있고
오늘도 철조망을 치는 작업을 하느라 군용헬기가 하루 종일 낮게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주 흉물스러울 뿐입니다.
저것들,
언제 걷어내야하나. 저 치떨리는 것들
언제 싹 뽑아버려야 하나.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숙소로 돌아와 목화씨 솜털을 뽑고 있습니다.
침탈이 들어온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전날까지 밭을 맸고
종자를 심었고, 약을 쳤던 우리인데,
그까이꺼 들판에 벌레 좀 꼬였기로서니 농사를 그만둘 수야 있겠습니까.
그냥, 가만히 앉아서 할 일이라곤, 그것 뿐인 우리에게
하라 마라, 영농행위가 어쩌고 저쩌고 그런 말은 통하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냥, 목화를 심기로 마음먹었고, 그래서 벌써 2주 전부터 물에 씨를 불려두었는데
이것들이 싹이 삐죽이 나오기로, 얼른 심어야겄다 싶어서 아까츰부터 솜털을 뽑고 앉아있었던 것이지요.

같이 심기로 한 친구가, 계속되는 긴장 탓에 피곤했는지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 깨어나면, 저녁 지어 먹기 전에 목화씨 심으로 텃밭에 또 나갈 것입니다.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만 배터리가 다 되어 지금은 못 올리고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오늘에서야, 인터넷을 쓸 수 있어 글을 뒤늦게 올립니다.
걱정해주신 분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면회 와주었던 용구리와 나무, 곤과 휑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기회 닿을 때마다 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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