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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평화대행진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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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로구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4건 조회14,866회 작성일2006-07-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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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8, 9일 평화행진에 참여했습니다.


5일은 서울역에서부터 사당까지였는데, 전체적으로 아주 순조로운 시작
이었습니다.
다만 국방부 앞에서 규탄대회를 하는데, 불법채증을 하는 경찰을 활동가들이
잡았더랬죠. 나중에 알았는데, 사진속에는 청와대에서부터 국방부까지의
행진팀의 사진들이 가득차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중요한 점은 국방부 앞에 허름한 중국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겉은
허름했지만 이상한 기운이 흐르더라구요. 저와 구멍은 각각 짬뽕, 짜장면을
시켰는데, 다른 테이블 모두는 탕수육을 시키더라는.. 13000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양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구멍은 다음번 국방부 집회때는
꼭 탕수육을 먹겠노라는 결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불판' 동지들도 이에
동참해주십시요..... --


국방부를 출발해서 동작대교를 건너 사당까지 행진을 마치고 나서, 아랫집을
향해 총총총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8, 9일.. 금요일 날 미리 들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미적미적
거리다가 일찍 자고 토요일날 아침 일찍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10시 급행을
타고 평택에 도착한 후 통복시장에서 콩국과 면을 사가지고 16번 버스를 탔
습니다. 12시도 안되었기 때문에 순순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과는 달리 바리케이트와 많은 병력으로 원정리 3거리는 막혀 있었습
니다.

사복경찰 2명과 전경 3명이 올라와서, 하나 하나씩 검문을 하더군요. 경찰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나서 제 앞에 섰습니다. 'stop the war' 티셔츠, 수상
쩍은 모양새 를 빼고 서더라도, 전혀 주민 같지 않은 저에게 신분증을 요구
하더라고요.


신분증 제시를 거부하고 행동요령에 따라 경찰의 소속, 성명, 검문목적,
이유를 행동카드를 보면서 --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을 잘 하더군요. 그리고 15분
동안 실갱이를 벌였습니다. 1-2-3-1-2-3 같은 질문하고 같은 대답하기를 반복
했는데, 주민분들은 경찰에게 해꼬지 그만하고 빨리 내리라고 호통을 지셨죠.
뒤에는 차가 밀리고, 승객분들에게 미안해서 내려서 해결하기로 하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결국 대추리는 못들어가고 다시 나오는 그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행진팀 일정에 맞게 평택구치지소로 가서 행진팀을 기다렸습니다. 민가협
어머니들도 먼저 기다리고 계셨죠. 가져온 콩국을 드렸더니 다들 좋아하시더라구요. 마침내 청와대에서부터 행진해온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행진팀은 평택시민단체
와 함께 구속자 석방대회를 마치고 평택역으로 걸어가서 촛불문화제를 준비했습니
다. 대추리에서 나온 비대칭, 윤정, 사이와 서울에서 내려온 썩은비, 매닉, 구멍, 젤리, 잭
그리고 수원에서 커피배달을 나온 미친꽃까지 제법 많은 불판팀은 신나게 문화제를
즐겨답니다.


문화제가 끝나고 난후 대추리를 향한 마지막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마지막 행진이라 다들 신나게 노래부르고, 춤추며 가던 길은.... 군문교 다리 옆 주유소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안정리 상인들이 원정리로 들어가는 길이 막고 있고, 차로 가던 선발대를 차에서 끌어내어 각목으로 구타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머리가 깨진 활동가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행진팀은 거의 2시간동안 주유소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웅성웅성거리더니 술에 취한 안정리 상인들이 지금 각목을 들고 여기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들은 각목을 든 이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행진팀을 둘러쌓을 때까지 방관하였습니다. 주유소 옆에는 석재를 쌓아놓은 곳이 있었는데, 상인들은 석재를 깨서 행진대오에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앞에 있던 여성분은 돌에 맞아 주저 앉았고, 부상자가 속출하였습니다. 계란투척에 욕지거리
그리고 소름이 돋을 만큼 살벌한 분위기...


결국 더이상의 행진을 포기하고 다시 평택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소식은 문화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대추리 주민들을 경찰이 막았다는 것이었습니다.
7월 3일에 들어간 평화농활팀이 같이 있다라는 이유로 막아선 경찰에 항의하기 위
해 주민들과 농활대는 원정리 삼거리에서 밤새 노숙투쟁을 펼쳤습니다.


평택역에서 숙소를 정하고 쉴려고 했던 행진팀은 그 소식을 듣고, 평택 경찰서로
가서 항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평택 경찰서 앞에서 경찰들의 '예의 없음'을 규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번 경고후의 진압'의 규정과는 달리 2번
경고뒤에 해산하려고 돌아서는 우리를 경찰들이 진압, 연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폭력적인 진압으로 인해, 사람들은 쓰러지고, 맞아가면서 잡혀
들었고, 다행히 피한 사람들을 경찰은 (잭의 비유를 들자면) 게슈타포가 유대인
다루듯이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속력으로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면 한명씩
쓰러뜨려서 연행하고, 다른 경찰들이 쫓아오는 식이었습니다. 누구는 80년대처럼
가정집에 들어가 숨고, 누구는 실신하고, 실신하는 연극을 하고, 빌딩에 숨고
학교에 숨고 해서 살아 남은 자들은 민주노동당 건물에 모였습니다. 얼추 50명의
연행자가 발생하고 부상자들도 많았습니다.


연락을 해보니, 부상당한 연행자를 경찰은 병원에도 안 보내주고, 계속 붙잡고 있다고 하더군요. 날이 밝고 나서 우리는 12시에 평택경찰서 앞에서 항의 집회를 했습니다. 시민들을 향한 진실을 알리는 대자보도 붙이고요. 그리고 1시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동지들과 함께 다시 한번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평택역에서 대추
리를 향한 길은 멀고 멀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 순식간이던 그 길은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원정리 삼거리까지 도착하니까 이번에는 경찰이 길을 막더군
요. 안정리 상인들은 저멀리 욕을 하고 있고요... 평택 지킴이 대회를 대추리가
아닌 길에서 열고, 285리 285만평의 땅과 평화를 위한 평화행진을 그렇게 막을 내
렸습니다. 7월 22일 4차 범국민대회를 기약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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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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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눈물이 나는구나... 그날의 일은 지금까지 투쟁인생 중 꽤 기억에 남을 만큼 두려웠지. 10여년전, 때로는 비처럼 쏟아지는 최루탄 사이를 뛰어다니거나, 전경에게 붙잡히거나, 혹은 골목골목으로 숨어들어간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엊그저께 같은 그런 느낌하고는 달랐어. 뭐랄까, 아마도 그 용역깡패들 때문에 더욱 기분이 똥이었나보다. 마치, 조폭영화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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