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평택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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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이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3건 조회8,729회 작성일2006-05-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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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be2in/20023894156
 
 



5일 들어갔다가 6일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1001부대 차가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씨빌, 욕이 나왔다.

 

평택은 입구부터 경찰이 막았다.

나는 부산에서 친척 형을 만나러 온 '가수'라고 뻥을 쳤지만, 들여보내 주지 않아서 걸어서 뱅 돌아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로 들어가는 모든 곳이 그렇게 막혀 있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건가? 불법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나야 법을 모르니...

 



 

평택의 들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이렇게 너른 들이 다 미군기지가 된단다.

새만금에서는 보석같은 뻘을 막아서 농지를 만든다고 뻥을 치고, 평택에서는 농사 짓겠다는 사람들한테 달랑 종이쪽지 하나 던져주고는 '전쟁하는데 꼭 필요한 기지(그것도 남에 나라)를 지어야 하니 나가라'고 한다. 농사 말고 다른 건 모르니까 그냥 농사짓겠다는 사람들한테 무슨 테러리스트처럼 대한다. 온 마을을 격리해 외부와 차단 시켰다. 자기들 주장이 옳다면 왜 길을 막았겠는가?

사람들이 평택에 들어가서 '아, 여기는 기지가 들어서야 마땅하니 마을 사람들 참 잘못이다.' 이렇게 생각할 거면, 경찰이 앞서서 사람들을 불러 평택을 견학시키면 될 것 아닌가. 그러기는 커녕 아무도 거기 못들어가게 한다. 친척 형을 만나러 왔다고 주민증까지 보여줘도 못들어가게 한다. 힘 약한 사람들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려고 참다참다 못해 들어간 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방패로 내리 찍는다. 그리고 군대까지 들여보냈다. 이런 미친. 한국 군대는 석유때문에 정신나간 미국 편에 붙어서 쓸데없이, 전혀 상관도 없는 나라(이라크)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더니, 이제는 아무 힘 없는 시골 사람들을 막으러 나왔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전경이 까마귀떼처럼 몰려든다.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미친듯이 달려들어봤자, 힘으로는 상대가 안된다. 전경들은 보호장구에 방패, 진압봉, 헬멧까지 쓴다. 천 명 진압한다고 만 명 온다. 이게 상대가 되겠나? 그런데 그게 모자라서 군대에 헬기까지 동원해?

 



 

5일 낮에 한 천 명이, 어떻게 저지선을 뚫고 들어왔다. 나도 마을 주민들과 같이 마중 나가서 박수쳤다. 와 사람들이 꽤 많이 왔구나!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마을로 바로 안 들어가고 들로 뛰어간다. 군은들을 막 쫓는다. 어, 저거 왜 저래? 학생들이 깃발을 들고 신나게 달린다. "왜 저러는거에요?"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뭐하나 따라 들어가봤더니, 철조망을 걷어내고 있다. 아.. 농사지으려면 철조망을 걷긴 해야 하지... 그런데 뭔가 불안했다. 전경들이 안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에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80년대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치더니 "있는대로 다 잡아들여!" 하는 소리와 함께 남녀구별없이 어두운 밤에, 닫치는대로 강제로 잡아들인다. 나는 잠시 얼이 빠져 넋을 놓고 서서 지켜보다가 아주머니들이 숨으라고 잡아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같은 방에 숨어있던 한 여학생이 놀랬는지 덜덜 떨면서 운다. 개색끼들. 청계천에서 밤구경 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믿을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게 있냐고? 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잡혀 갔고, 집집마다 조금씩 숨어있던 학생들은 새벽 4시에 다들 빠져나갔다. 나는 졸려서 더 잤다. 한 두명이야 어떻게 나갈 수 있겠지...잡아가려면 잡아가라.

다음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봄비가 내렸다. 기타를 들고 갔지만 아직 꺼내보지도 못한 것이 아쉬워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웬지 노래하는 것도 어색했다. 원래는 어제 사람들이 철조망 끊을 때도 나는 기타를 치려고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깃발을 들고 뛰어다니던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였다.



 


 

 
나와서 생각했다. 정말 우리가 힘이 없구나. 경찰들이 떼지어 몰려드니까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낮에는 만족했지만 몇 시간 뒤에는 완전 깨졌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건 뻔한 일이었다. 우리는 힘으로 경찰과 군대를 이길 수 없다. 잠깐동안 깃발을 들고 뛰어다니면서 군인들을 몰고 철조망을 끊어서 기뻐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경찰과 국방부를 자극해서, 폭력진압을 불러 들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누가 들으면 형편없는 생각이라고 욕할까봐 겁나지만, 내 생각에는 다른 식으로 싸우면 좋겠다. 저놈들이 때리고 짓밟아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저항할 수는 없을까?

만약 그때 한 열 명만 있었어도, 아콤다만 있었어도, 우리는 제일 앞에서 경찰이나 군대를 마주보고 노래를 했을 것이다. 천 명이 모두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군대와 경찰에게 저항하는 건 불가능할까? 꼭 노래나 춤이 아니라도 다른 식으로 말이다.

 

솔직히 경찰이나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뿐이다. 어쩌면 경찰과 싸우는 것도 대상을 잘못 고르는 것이다. 그 애들과 치고박고 해봤자 우리만 서로 다친다. 4.19때처럼 온 시민들이 함께 일어난다면 모를까. 힘으로는 안된다. 다치기만 하고, 이제까지 봐 왔듯이 존나 깨진다.

 

미디어 활동가들은 경찰과 군대 폭력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고, 지식인들은 왜 미군기지가 들어서는 게 평화에 위협이 되는지 쓰고 또 써야 하고, 학생들과 평택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 참다참다 못해 평택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우리가 할 말을 해야 한다. 모두가 북을 치거나,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뭐든 각자 자기가 잘하는 다른 방식으로 싸우면 안될까? 화가 나고 너무 당해서 살이 떨리겠지만, 아무래도 힘으로는 안 된다.

여론을 우리 쪽으로 몰고 와야 하는데(정치인들은 표에 움직이니까), 그렇게 하려면 저놈들에게 폭력의 빌미를 주지 말고 침착하고 평화롭게 평화를 말해야하지 않을까? 대추리 평화공원 옥상에서 내려다 봤을 때, 거기는 무슨 우드스탁 같았다. 온갖 조각품들이 널려 있고, 집집마다 시와 그림이 그려져 있고, 사람들은 평화를 달라고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거기에 구호와 죽창 대신 노래와 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바보 같다고. 허약한 이상주의자 같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날 나는 옥상에서, 우드스탁처럼 싸우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치는게 싫고, 저놈들한테, 거지발싸개 같은 방송한테 트집 잡히는 게 싫다!! 이제 이 한심한 세상과 싸워 이기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다시 길거리 밴드가 만들어지면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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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깽님의 댓글

부깽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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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닉님의 댓글

매닉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공감해요.
약한자들은 타협이나 굴종이 아니라
약하게 싸우는 법을 익혀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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