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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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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님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67.135) 댓글댓글 조회5,158회 작성일2004-04-0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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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현행 방침대로라면 무단으로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3년 이상 한국에 거주한 이주노동자들은 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는 올해 2월까지 자진 출국한 이주노동자에 한해 그들을 우선적으로 재입국시키겠다는 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 돌아오려면 적게는 몇백 만원, 많게는 몇천 만원의 돈을 브로커들에게 주어야 하며, 돌아와도 3년밖에 일할 수 없다. 때문에 전체 미등록 이주노동자 17만 2천여 명 중 자진출국을 한 이들은 7천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6만5천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땅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우선, 지난 3개월 동안 벌어진 집중 단속에 의해 3천여 명이 자국으로 강제 출국됐다. 그리고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은 경찰과 법무부의 ‘사냥’을 피해 공장에서, 집에서, 죽은 듯 숨어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거주지역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집까지 침입해 연행하고 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선교센터에서는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센터에 들어와 한국인 목사를 폭행하고 이주노동자들을 연행하려 했으며, 대구의 성서공단에서는 수색영장 없이 공장에 들어와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구속할 때 여러 사항을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조차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이렇게 그들은 인간사냥의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감옥보다 열악한 외국인보호소

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붙잡힌 사람들은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된다. 이들 중 임금 체불이나 산업 재해처럼 한국에서 해결할 문제가 남아 있는 경우엔 ‘일시보호해제’를 신청해서 보호소를 나올 수 있지만, 이 절차 역시 간단치 않다.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은 결국 강제 추방당한다. 그런데 출국 전까지 수감되는 외국인보호소의 인권침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여수 보호소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방과 복도 및 면회실에 CCTV를 설치해 감시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해 집회를 열고 농성을 하다 연행되어 화성보호소에 수감 중인 깨비와 굽다는 항의 단식을 하는 와중에 의사의 진찰을 요구했으나 면회자들이 가져온 약품이 전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단식 21일 만에 가까스로 의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교도소에서도 주어지는 운동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단식투쟁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감금되고, 보호소 직원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강제 출국되기도 한다. 그들은 한국의 감옥보다 더 열악한 보호소에서 그렇게 출국 날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다.


강제 출국되면 목숨이 위험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자국 상황은 한국에서의 현실과 맞물려 이들을 더욱 절망스럽게 하고 있다. 현재 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네팔의 경우, 사회주의자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오주의자들이 과거 한국의 빨치산들처럼 정부와 크고 작은 게릴라전을 치르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통해 능히 짐작할 수 있듯, 네팔의 사회주의자들은 군복을 입고 싸우는 게 아니라 민간인 복장으로 게릴라전을 펼친다. 따라서 ‘마오주의’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이 무차별적으로 살상되는 일이 흔하다. 이 과정에서 마오주의와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들까지도 학살의 대상이 된다. 네팔의 ‘마오주의자’란 과거 한국의 ‘빨갱이’와 다름없다.

이러한 상황은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노동운동이나 반정부운동과 결부된 활동을 했던 전력이 드러나면 어떠한 처분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노동비자를 얻기 위한 농성에 참여했다가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에게 붙잡혀 자국으로 추방되었던 방글라데시인 비두와 자말의 경우, 한국 정부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었다. 결국 그들은 자국에 돌아가서도 감옥을 드나드는 신세가 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전례로 미뤄보건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를 위해 농성에 가담한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강제 출국된다면 극히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방글라데시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농성자 중 몇몇은 자국 신문에 ‘방글라데시 국가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실린 적이 있다. 최근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송출 받는 국가를 결정하면서 방글라데시를 제외시켰는데, 한국정부와 마찰을 빚은 이주노동자들이 그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중간에서 수많은 돈을 가로채오다 졸지에 돈줄을 잃은 방글라데시 브로커들은 ‘방글라데시 국가 경제를 망친 주범’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청부살인업자까지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농성에 결합한 방글라데시인들 역시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을 외치고 자신들의 노동 합법화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노동자와의 연대를 외치며, 독자적인 활동뿐 아니라 파병반대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결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한국정부는 말한다. “너희 문제에나 신경 쓰지. 왜 남의 나라까지 와서 정치 활동을 하는 거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했던가. 꽃샘추위 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상황을 들어주고, 지지하고, 연대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임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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