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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외국인 연인 "한국,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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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님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67.135) 댓글댓글 조회4,970회 작성일2004-04-0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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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자친구와 저는 둘 다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남자친구보다 저에게 항상 우호적입니다. 제가 백인이고 남자친구는 동남아시아 사람이기 때문인가요?"

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만난 캐나다 출신의 낸시 그린(여·38). 하얀 피부의 백인 여성인 낸시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친구 코빌 우딘(31)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낸시는 캐나다 출신으로 4년 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지금은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낸시를 다정한 표정으로 지켜본 코빌. 그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8년 전 3개월짜리 관광비자로 한국에 입국했고 비자 만료 이후 지금까지 불법체류자로 지내고 있다.

두 사람은 2000년 11월 한 국제단체가 주최하는 외국인 노동자 집회에서 만났다. 코빌은 당시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낸시는 코빌의 활동에 관심을 보였고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졌다. 지난해 말 코빌이 낸시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두 사람은 이후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지금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낸시와 코빌의 꿈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 하지만 그 꿈은 당분간 이뤄질 수가 없다. 불법체류자로 명동성당에서 4달 째 천막 농성 중인 코빌이 성당을 벗어나는 순간 붙잡혀 추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을 빼면 비슷한 점이 더 많다. 두 사람 다 모국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코빌은 아예 일자리를 못 구했고 낸시는 캐나다에서 비정규직 요리사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받는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면 돈 많이 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영어학원에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학원에서 '백인이냐 흑인이냐'고 묻더군요. '화이트(White·백인)'라고 말했더니 학원에서 너무 좋아하면서 당장 오라는 거예요."

학원은 낸시에게 비자를 구해주고 비행기표와 거처까지 마련해 줬다. 반면 코빌은 "월급은 낸시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가도 우리(동남아시아 사람)한테는 옷을 안 파는 곳이 많다"고 우울해했다.

낸시는 "택시를 타도 캐나다 사람이라고 하면 기사들이 '캐나다 베리 굿'이라며 좋아하던데"라고 말하자 코빌은 "나는 택시타면 '어디 가느냐, 이 XX야'라며 욕 하는 사람이 더 많다"라며 씁쓸해했다.

"한국 사람들은 따뜻하고 친절해요. 그래서 한국이 너무 좋습니다. 친절한 태도에 늘 고맙게 생각했어요."(낸시)

"왜 난 반대로 느꼈지? 난 한국 사람들이 너무 거칠어서 '외국인에게 유독 불친절하고 배타적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코빌)

코빌과 낸시는 "둘이서 다정히 팔짱 끼고 걸어가다 보면 한국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며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넉 달 째 이어진 농성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낸시는 이렇게 안타까워했다.

"한국 사람도 브라운(황인)이고 코빌도 브라운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브라운보다 화이트(백인)를 더 존중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백인인 저한테 보여준 한국인의 친절과 따뜻한 사랑을, 제 남자친구와 동료들에게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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