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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성원, 법과 제도로 다 담을 수 없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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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님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조회8,894회 작성일2004-04-10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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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서 상담했던 사례들을 쓴 글입니다. 특히 이주여성팀을 고민하는 분들과 함께 읽어보았으면 좋겠어요.


법과 제도로 다 담을 수 없는 희망


조유성원(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여성정책팀장)


한 가족이 센터에 들어섰다. 목에 커다란 깁스랄 한 아빠와 배가 불룩한 엄마, 그리고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낯선 우리들을 말갛게 쳐다보는 네살박이 아이. 그네들은 잿빛 하늘처럼 우울해 보였다. 피로해 보이는 얼굴로 아이의 엄마는 물어왔다. 남편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별과 동거밖에 없는 불법체류자

중국 조선족 동포인 김광일씨는 지난 1992년 한국에 입국해 불법으로 체류하면서 건설현장을 전전하면서 돈을 벌며 혼자 생활을 했었다. 그러던 중 1997년 친구의 소개로 소영례씨를 만났다. 혼자 외로운 생활을 하던 광일씨와 전남 보성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생활을 하던 영례씨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불법으로 한국에 체류중이었던 광일씨는 결혼식을 치르거나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합법적으로 결혼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합법적인 상태로 귀국해야 했다. 그러나 중국으로 돌아갈 경우 언제 다시 올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왜냐하면 불법체류라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2년 동안은 입국이 규제되고 2년이 지난 후에도 재입국이 힘들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한 번 불법으로 체류한 경력이 있는 자는 가능한 한 입국허가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와 그녀는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재입국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두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별과 동거밖에는 없었따. 다행히 소영례씨 부모님께서 결혼을 반대하시는 입장은 아니셨기 때문에 98년 겨울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세상에 둘도 없는 예쁜 딸 소은이를 얻었다.


남편의 부재와 출산이 겹쳐

그런데 그만 김광일씨가 지난 해 3월 건설일을 하다가 6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목뼈와 척추뼈를 크게 다쳤다. 자진출국기간 중에 고향에 다녀와 결혼신고를 할 계획이었던 남편은 꼼짝도 못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미등록상태였던 그는 G-1 비자를 받아 산재처리 기간 동안 합법체류자가 되었다. 그러나 기간은 2004년 2월까지. 이후에는 강제출국을 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진출국해서 고향에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결혼신고를 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고, 오히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출국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일까. 남편이 산재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가 둘째를 임신했다. 그 출산일이 2004년 4월. 아빠가 중국으로 돌아간 후이다.

아빠 없는 상황에서 둘째를 낳아야 하는 그녀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소은이를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던 그녀는 남편이 출국을 당하면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상태가 된다. 돈도 돈이지만, 남편 없이 혼자서 산고를 치뤄야 한다는 불안감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녀가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의 부재, 그 막막함이었으리라.


G-1 비자를 F-2 비자로 전환

이들 부부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 걸까. 그들은 가족들이 헤어지지 않고 안정되게 한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가족구성권이 필요했다. 남편의 산재처리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발급받았던 G-1 비자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결혼신고를 해서 외국인 배우자에게 주어지는 영주거주권을 받아야 안정되게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김광일씨가 중국에서 결혼신고를 하고 와야 외국인 배우자에게 주는 영주거주권 비자인 F-2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남편은 중국에 다녀와야 한다. 그러면 부인은 둘째 출산을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 센터에서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남편의 G-1 비자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현재 처한 여러 가지 딱한 상황, 즉 산재로 인해 몸이 좋지 않고 부인은 4세의 큰딸과 함께 둘째를 혼자서 출산해야 하는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설명해 특별한 경우라는 점을 주시하여 중국을 다녀오지 않고 외국인 배우자 영주거주가 가능한 F-2 비자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이들 부부의 결혼증명서와 가족사진, 주위 사람들이 가족임을 증명하고 가족과 함께 살게 해 줄 것을 부탁하는 탄원서, 본인이 직접 작성한 탄원서, 그리고 센터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게 직접 적은 탄원서를 가지고 양혜우 소장님과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 고충처리상담실을 찾았다. 다행히 이들 부부의 딱한 사정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공감해 주었고,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F-2 비자 발급을 해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다른 국가의 법이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

서류상의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므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생겼다. 김광일씨의 아버님이 중국에서 보내온 서류인 결혼증명서, 즉 김광일씨가 중국을 가지 않고 한국에서의 혼인신고서로 중국 호적부에서 김광일씨의 기혼 사실을 공증한 서류에 소영례씨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서류통과를 해주지 않았다. 직원의 지적사항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한국과는 달리 외국인배우자의 이름은 2년간 기록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법을 설명을 해주어도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이해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은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류 통과를 거절했다. 중국의 각 성마다 규례가 다르게 진행되었거나 혹은 중국 공무원에게 뒷돈을 대주어서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제기를 하여도 대화가 되지 않았다. 직원은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소영례씨 이름을 적어오라는 것이다. 직원과의 몇 차례 실랑이를 하고 돌아서면서 서류 통과를 위해서는 중국 공무원에게 뒷돈을 대주든가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부정한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서로 다른 국가의 법이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무원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불법을 감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몇 차례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오는 김광일씨의 정성이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마음을 움직였고, 접수한 지 한달이 훌쩍 지나 서류가 통과되어 지난 3월 15일 남편은 F-2 비자를 발급받았다. 자칫 한 가족이 서로 떨어져 생이별을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두려움에 눈물을 떨구던 소영례씨의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사람만이 희망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영례씨가 편안한 마음으로 순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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