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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기준이 돈의 액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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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쇼르쏘띠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1건 조회6,544회 작성일2004-07-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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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이미 20년 전에 사용도 생산도 금지됐으나 한국에선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 있습니다. 바로 '석면'. 여러분들이 지하철 애용자라면, 때때로 지하철 플랫폼 벽에 "지하철 시공에 참여했던 노동자 중 석면으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고 있는 노조 명의의 벽보문가 나붙는 것을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화공계 쪽 지식은 깡통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무지 그 자체인지라 저는 석면이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며칠 전, 택시를 타고 외근을 나가는데 라디오에서 전화인터뷰 비슷한 게 나오더군요. 머리카락의 1/1000 굵기로, 몸속에서 분해가 되지 않으며, 애초에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일본에서 20년 전에 사용이 금지됐단 이야기도 그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었습니다.


문득, 올해들어 부쩍 지하철에서 발한을 동반한 현기증을 졸도 직전까지 느끼곤 하는 제 증상이 석면과 관련된 것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뭐 이건 반농반진의 생각이고... 하여간 이렇게 위험한 것을 거의 매일 매번 들이마셨던 사람들이 바로, 지하철과 각종 건물을 짓는데 투입된 건설노동자들이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도 노조들 중심으로 석면중독자를 찾는 작업이 드디어 가시화된 것 같고요. 라디오 방송에서 그 방송이 나오는 걸로 봐선, 아직 사용금지가 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석면 때문에 백혈병에 걸렸다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 투쟁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말로 다 못하겠지요? 석면의 위험성을 증명하는 것에서부터 사용자와 국가에 문제제기를 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동료들을 설득해내고, 힘을 모으고, 그 와중에 또 배신도 겪었을 것이며, 또 힘겨운 법정소송을 진행하고... 그 와중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결국 포기한 동료들도 있었고, 그런 동료들을 보며 또 눈물을 흘렸겠지요, 그는.


결국 그는 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고, 거액의 보상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좌파 영화감독, 켄 로치는 그와 접촉했고, 그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직접 쓴 각본으로 심지어 영화를 만들기까지 했어요. 그것이, 바로 재작년 국제노동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2001)라는 영화라 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전세계에서 상영되었고, 비록 많은 숫자는 아니나 전세계 좌파,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켄로치 감독의 영화에 까메오 출연도 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합니다. 영화 완성 전에 결국 암으로 사망을 했다고요.


저도,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 하였어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매우 선택적으로만 한국에 소개될 뿐이고, 재작년 노동영화제 때 저는 부산에 있었죠. 어쨌건, 그는 자신의 다른 동료들과 결국 국가를 상대로 싸워 승리했고, 거액의 보상금도 받았습니다. 또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었지요. 하지만 그가 온전히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그의 몸은 병들었고, 암세포가 갉아먹고 있었는데요. ... 그럼에도, 만약 그가 싸우지 않았더라면, 승리하지 않았더라면, 또 그는 얼마나 불행과 절망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을까요.


노동자의 '연봉'에 그리도 연연하는 사람들은, 그가 받은 보상금의 액수를 들먹이며 그의 투쟁과 싸움을 깎아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그 사람은 말년에 거액의 돈을 쥐었잖아, 영화에도 나왔다며, 우린 조또 그딴 것도 없어, 그 새끼가 죽으면서 혹은 영화에서 무슨 소릴 했든 돈이 많으니까 할 수 있었겠지...  지랄.


궤도연대에서, 또 LG 칼텍스를 비롯한 석유화학 노동자들이, 지금 파업을 합니다. 인천은 어제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어 오늘부터 정상운행을 한다지만. 비정규직 철폐, 전원 정규직화, 안전체계 강화, 신규인력 도입, 등을 외치는 파업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명목만 그리 내세우며 실질적으론 임금인상'만'을 추구할지, 이후 지하철의 환경을 바꿀지, 고용창출을 이루어낼지... 하지만 싸우지 않고 무엇을 얻어낼 수 있나요.


밑에 어떤 조두께서는 연봉 5천과 일당 5만원을 동일시했다고 지랄하는데, 설마 정규직이 연봉 5천이라고 비정규직도 연봉 5천이라고 믿는 건 아니겠죠? 비정규직 문제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님들 말대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많은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제껏 더 힘차게 싸우질 못했습니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도 입으로만 연대한대요. 그러니 지난번, 우리 지지모임 사람들이 민주노총 앞에서 시위를 한 것이지요.


근데요. 민주노총이 싸우는 방식은, 지도부 대가리 몇이 결정하면 그 밑에 수만 노동자는 그냥 동원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파업을 위해선 적어도  노조원들의 투표를 거쳐요. 싸움을 본격화하고 열심히 하지 않은 것, 님들 논리대로 하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이죠. 난 이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어요. 도리어, 화가 날 땐 아 씨발 빌어먹을 대기업 정규직 새끼들, 빌어먹을 민노총 새끼들, 이라고 욕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떤 노조가 당연한 생존권을 요구하며 파업을 할 때, 저는 그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작금의 파업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지요. 그럼 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민주노총, 좀더 제대로 싸워... 노조원들이 파업강행하는데 그냥 협상해버리지 마...


하지만 님들은 이주노동자들을 향하여, 그 이기적인 정규직 노동자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님들은 '불법체류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불법체류'를 그토록 양산해낸 체제와 국가에 대해선 입다물고 있어요. 이주노동자 도입이 자본의 노동력경쟁을 유발하여 노동조건 악화하고 노동자들의 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합니까. 바로 그것을 위해, 계약직, 촉탁직, 파견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확대되었고, 이주노동자들을 도입한 후 '불법체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님들이 이주노동자 반대를 외치면서 어떻게 대기업 정규직을 욕할 수 있는지 참 신기해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몰아내자, 우리 조건을 악화시키니까, 라고 주장하면 거기에 고개 끄덕하실 겁니까. 전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푸는 방법 역시, 그래서 현재 미등록 상태에 있는 이주노동자 합법화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결코 원하지 않음에도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체제를 고치고, 내국의 노동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노동하게 하는 거죠.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라는 요구가, 원하는 이들 무조건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우기고 계신 님들 보면 딱합니다. 적절한 도입 노동자수를  산정하고, 노동허가제를 통해 이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경로를 투명하게 만들고(불법 브로커, 대사관/영사관의 불법 등의 근절), 이들이 한국에 와서 직종과 사업장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고, 정해진 기간 내에 국내 노동자들과 똑같은 조건과 대우 하에서 노동을 하고 돌아가고, 한국에 영주를 원할 시 일정한 자격심사를 거쳐 시민권을 부여하고...  노동허가제가 완벽한 대안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합리적인 제도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님들이야말로 노동허가제를 외쳐야 하지 않습니까? 노동허가제는, 솔직히 제가 보기엔 지극히 중도적인 해결책에 불과해요. 솔직히 저는 좀더 좌파적인 걸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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