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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열사 49재 추모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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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젤리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5건 조회12,285회 작성일2007-06-04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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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열사 49재 추모제 후기


열사의 죽음은 항상 가슴 아프지만, 허세욱 열사의 죽음은 더더욱 가슴 아팠는데, 그것은 그가 평소 대추리에 자주 방문하고 지킴이 친구들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나는 그를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내가 아는 이들이 그와 알고 지내는 관계였다는 점은 나 역시 그와 개인적인 관계로 얽혀있는 느낌을 들게 했다. 부조리한 사회에 항거하기 위해 당신이 선택한 마지막 수단은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현실의 부정의를 폭로시키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열심히 싸우게끔 하는 등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내가 당신을 알았기에 나는 씁쓸함이 더 컸고 다른 때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대학로에 도착한 시간은 4시. 한 시간 지각했다.


집회는 이전 다른 집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추모제를 겸한 집회였기에 구호의 후렴구가 열사정신계승이었다는 게 다른 점 정도. 여러 단체들의 대표들이 나와서 FTA가 남한 경제에 불러 올 손해들을 열거하며 이를 저지시키자는 발언들을 하고 내려갔고 박준 아저씨는 접수가를 부를 때, 노동자를 민중으로 바꿔 노래했다. 트로트풍의 민중가요는 선동성 강한 멜로디와 비트의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노래들보다 귀염성이 커서 그만의 다른 매력이 있지만, 박준 아저씨의 접수가는 가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노래가 그의 히트곡인 만큼 박준 아저씨는 두드려 패도 모르는 국회의원들대신 민중이 청와대 접수하자며 열창했다. 내가 늦게 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문예 공연이 원래 하나밖에 준비되지 못한 것인지, 나머지는 다 발언들이었다. 자본주의 하에서 시장의 세계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FTA저지의 논리 역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전복과 연결될 수밖에 없지만 발언자들이 항상 그 얘기는 쏙 빼놓고 말해 나의 아쉬움을 샀다. 나같은 류의 게으른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할, 부지런한 조사를 통해 얻은 구체적인 수치들과 자세한 전문가적 지식들로 현재 FTA의 부당함을 낱낱이 폭로하면서 결론은 항상 단순한 FTA저지로 맺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이전 집회들에서 느꼈던 것처럼 또다시 반복되었다. FTA저지라는 현실적인 슬로건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명확한 반대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를 그저 한국경제 지키기 위한 것으로 소급시키는 모습들은 백만원짜리 신부화장을 받은 후에 그냥 집에 처박혀 무한도전이나 보며 낄낄대는 것같은, 굉장히 아까운 느낌을 들게 한다. 그 곳에 모인 오천 가량의 사람들만이라도 자본주의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준비된 혁명친구들이 되면 얼마나 좋냐 이 말이다. '그만큼이 범국본 정치야. 몰랐니?' 류의 태클은 받지 않도록 하겠다.


4월에 금속대의원대회에서 FTA반대투쟁을 결의해놓고는 아직 구체적인 소식이 없는데 어서 총파업하고 민노총도 딱 붙어서 다 총파업하고 그렇게 싸우길 간절히 바란다. 그나마 금속노조의 그 결의라도 반가운 것은 '우리 산업지키기'정도 명목의 FTA투쟁이 아니라 FTA를 통해 구조조정을 심화시키려는 자본에 대한 반대가 그들의 총파업 결의의 근거라는 점이다. 국회일정에 맞춘 투쟁이나 민노당 대선승리를 위한 전략적 투쟁이 아닌, 진짜 투쟁 좀 했으면 좋겠다.


엄청 더운 주말 오후였지만 맥주를 동지삼아 앉아있었더니 시간은 잘도 갔다. 결의문 낭독 후에는 대학로에서 시청까지 행진을 했는데 행진할 때는 왠지 적적해서 내가 다니는 학교 깃발 밑에 스윽 껴들어갔다. 학생운동권만의 특권(?)이자 강요된 의무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귀여운 구호 외치기'다. 짱구 구호, 뛴다 구호, 울라울라 구호, 텔레비젼 구호, 힙합구호 등등의 발랄함과 귀여움을 강조하는 구호들은 오로지 학생운동권만 한다. 어른들은 절대 안한다. 나도 거기 껴서 오랜만에 귀여움을 과시했는데 그 쪽에서는 사실 나도 나이많은 선배라 약간 민망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행진을 하다가 명동쯤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걸 봤다. 치파오를 입고 곱게 화장한 남성분을 비롯, 검은 롱드레스에 엄청 더워보이는 깃털목도리를 두른 남성분들이 우리 대오쪽을 쳐다보길래 무심코 '명동에서 코스프레 행사하나'라고 말해버렸는데 아니랜다. 퀴어문화축제란다. 그 때는 귀여운 구호를 외칠때 보다 적어도 열 배이상은 더 민망했다. 그래서 민망함에 자리에서 벗어날 겸, 한 번도 안 가본 퀴어문화축제 분위기나 볼 겸해서 대오에서 또 스윽 나와 축제에 합류했다. 내가 갔을 떄는 L sis라는 예쁜 언니들 밴드가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이쪽에서는 유명한 밴드인지 사람들이 막 소리지르고 뛰고 난리도 아니였다.


사실 이런저런 집회를 다니면서 게시판에 후기 한 번 안 쓴 나인데 이번 집회는 후기를 쓰는 이유가 있다. 아래글의 댓글로 부러워할 준비들 하라고 써놓았듯이, 나는 후기를 핑계삼아 자랑을 하려는 것이다. 자랑을 하려는 것이라구! 자랑을 하려 한다구! 으하하하*-_-*
L sis언니들 노래 끝나고 사회자가 올라왔다. 홍석천이었다. 내가 설마 홍석천봤다고 자랑하는 건 절대 아니고, 홍석천이 마지막 공연이라면서 누군가를 소개했는데, 누구게?














미첼언니.....ㅠ ㅠ












나 미첼언니 봤다. 영화 헤드윅의 감독이자 주인공, 존 카메론 미첼. 꺅! 난 그 사람이 한국 온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헤드윅 공연때문에 왔다가 여기에도 들렸다고 한다. 미첼언니 올라오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_- 언니는 뉴욕에 있는 퀴어퍼레이드보다 한국에서 하는게 훨씬 더 마음에 든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는데 뉴욕은 사람들이 뭔가 팔기에만 전념하는데 한국은 다같이 춤추고 놀아서 보기 좋댄다. new york sucks라고 까지 말했는데, 그거야 뉴욕에서도 똑같이 말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그냥 아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origin of love랑 wicked little town을 불렀다. 노래 잘하는 것을 넘어서 쇼맨쉽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타고난 예능인. 그리고 타고난 미중년. 물 먹는 척하다가 입에 들어있는 물을 우리들에게 푸우 뿌렸는데 나 맞았다. 나 미첼언니가 입에 넣었다가 뱉은 물 맞았다구! 응? 나 언니 입 속에 있던 물 맞았어! 꺅! 이 한 번의 세례로 난 이미 미첼교의 신도..-_- 섬집아기도 불렀는데 한국에 온다고 한국 노래 열심히 연습했을 미첼언니를 생각하니 기특하기 그지 없었다. 미첼언니 노래 끝나고 문화제도 끝이 났다. 버스타러 종로쪽으로 걸어가는데, 청계천에서 사람들에게 드럼을 가르치고 있는 드럼써클도 봤다. 휴... 뭔가 피곤한 하루. 근데 이 날 집에 왔다가 술먹으러 홍대 놀이터로 나갔는데 역시 놀이터에서 술먹고 놀면 잘해봤자 술먹고 노는 거고 기분 안좋아지기 일쑤다. 그래도 잭, 왜 그날 안나오셨나요..ㅠ ㅠ



아무튼 이 글의 요지는 '젤리, 미첼언니가 뱉은 물 맞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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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젤리님의 댓글

젤리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그래도 다시 한번, '열사정신 계승하여 FTA 저지하자!' 허세욱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투쟁할게염. 그리고 다들 보고싶어염.

mooona님의 댓글

mooona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내가 아는 A는 토요일에 퀴어퍼레이드를 보고 일요일에 작은대안무역 옷팔이에 가담하는가 하면, 내가 아는 B는 작은대안무역 옷팔이를 하고 G8반대 행동 모임에 왔고, 내가 아는 C는 퀴어퍼레이드를 보고 대안무역엘 왔는가 하면, 내가 아는 젤리는 고허세욱씨 추모집회를 보고 퀴어퍼레이드를 갔었군.
엇갈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하지만 그 물이 그 물!
나도 그대가 보고싶다~
수요일 4시에 안티지에잇 행동에 오삼
(이상 광고, 삭제번호6868 지에잇지에잇)

곳님의 댓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백만원짜리 신부화장을 받은 후에 그냥 집에 처박혀 무한도전이나 보며 낄낄대는 것같은, 굉장히 아까운 느낌을 들게 한다------ 이 글의 백미.

uhhm님의 댓글

uhhm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 글을 읽다보니 그 헤드윅 공연이랑 섬집아기부르던 공연이 생각나네요. 한창 얘기중이라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만 보았었는데, 강강수월래 할때도 재미나 보였어요. 홍석천씨는 퀴어축제때 매번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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