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부엌칼을 들고 거리로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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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돕헤드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조회6,501회 작성일2007-02-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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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정직하고 고귀한 일 두 개를 꼽으라면 나는 농사짓는 일이랑 육아/살림/가사노동을 꼽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이야말로 세상을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윤추구와 권력유지에만 골몰하고 있는 이 나라의 지배자들은 이미 농업은 경쟁력이 없다고 포기해버렸는데, 한미 FTA 체결로 한국의 쌀보다 가격이 반 이상 싼 미국산 칼로스 쌀이 수입되어 들어오면 이미 한국의 밥상을 차지해버린 수입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함께 한국의 농업은 완전히 붕괴해버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해진다.
그렇게 되면 농약과 방부제로 범벅이 된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광우병 소고기 사이에서 채식을 해야 할지 아니면 육식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진다.
막대한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갖은 수단과 장치를 동원해 우리의 밥상머리에까지 쳐들어온 자본의 음식상품 앞에서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선택할 여지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추구로 점점 망해가고 있는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바로 농민과 살림꾼들이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휴대전화가 없어도 살 수 있고, 컴퓨터나 자동차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식량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그래서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꾼들의 노동과 이것을 먹거리로 만드는 살림꾼들의 부엌노동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인 셈이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인간의 몸에 안전하고, 환경에도 해가 되지 않는 음식물을 먹을 우리들의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마저도 초국적기업의 횡포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살림꾼들과 농사꾼들이 나서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이제 곧 한국의 총지배자는 미국의 수괴와 전화통화를 통해 한미 FTA의 전격적인 체결을 선포한다고 한다.
끔찍한 봄소식이 아닐 수 없다.
쌀농사를 짓던 대추리, 도두리의 농민들이 제국 군대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비옥한 농토를 내주고 쫓겨나야 하는 사실만큼이나 기가 차고 분노가 밀려오는 일이다.
 

내가 하나하나 만들고 꾸민 대추리 불판집 구석구석을 나는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부엌이다.
하루 해가 저물고 저멀리 황새울 들녘으로 시뻘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5시 30분 무렵, 내 부엌 한 켠 밥솥에서 피어오르는 밥이 되어 가는 냄새를 나는 무엇보다 사랑한다.
저 들녘이 이대로만 있을 수 있다면 이렇게 밥을 지어 먹고 푸성귀를 뜯어 먹으며 나는 더 없이 행복할텐데.
그것이 다름아닌 평화일텐데.
 

그런데 한미 FTA가 체결되면 당장 내 부엌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 순간 문득 내 눈에 무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사온 버섯과 두부를 다듬으며 살림살이를 하던 나는 내 손에 부엌칼이 쥐여져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절망의 세월이 시작되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이윤에 미친 자들이 내 녹색 미래를 팔아버리기 전에 무기를 들어야겠다는 깨달음이 퍼뜩 밀려온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혁명은 부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많은 뜻을 담고 있지만 세상을 뒤바꿀 힘은 바로 밑바닥에서부터 세상을 살려온 농사꾼과 살림꾼에게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오늘 깨닫고 있다.
 

살림꾼들이여, 그리고 농사꾼들이여.
부엌칼과 도마와 호미와 쇠스랑을 들고 거리로 나서자.
한미 FTA를 체결해 부자들의 배만 불리고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지배자들에게 외쳐야 한다.
가진자들만을 위한 협상을 당장 중단하라고 말이다.


세상을 먹여 살려온 노동이 갈 데까지 간 자본주의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살림꾼들이 나서서 이윤으로 썩어빠진 세상을 살려낼 때다.
고무장갑을 끼고, 두 손에 부엌칼과 도마를 들고 만 명의 살림꾼들이 푸른 기와집 앞에 모여 당장 한미 FTA를 중단하지 않으면 '머릿고기를 베어 요리를 해먹겠다(斬首而喫也)'고 선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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