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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10년 노예노동의 대가는 언제나 똑같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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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님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67.135) 댓글댓글 조회6,009회 작성일2004-04-0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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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공장, 식당 혹은 유흥업소에서 여성이주노동자는 더 이상 낯선 얼굴이 아니다. 이주민, 노동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한 몸에 짊어진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고달프다.


'이주노동자에다 여성', 차별은 곱절이 되고

차별은 인종과 성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검은 피부색의 노동자, 게다가 여성이라면 차별의 칼놀림은 더 바쁘다.

지난 10여 년간 동대문 봉제공장에서 일해온 라디까(네팔, 33세)씨는 "한국 노동자에 비해 3-4시간을 더 일하지만 월급은 오히려 40만원 정도 작다"고 토로한다. 차별의 골은 비단 국내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차별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도 파고든다.

그 결과 영세사업장 한국 남성노동자의 쥐꼬리만한 임금은 한국 여성노동자, 남성이주노동자, 그리고 여성이주노동자로 갈수록 토막토막 잘려나간다. 라디까 씨는 매일 13시간에서 14시간을 꼬박 일하고 백여 만원을 받았다.

어쩌다 아파서 하루를 쉬면 3일간의 일당이 깎이기도 했다. 이러한 차별과 착취는 빈곤의 쳇바퀴에서 맴도는 삶으로 남았다. 라디까 씨는 "겨우 2살에 떼어놓고 온 아이가 너무나 보고싶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네팔에서 먹고살기가 막막하다"며 "지난 10년 간 노예노동의 대가는 언제나 똑같은 가난"이라고 말한다.


서비스업종 여성이주노동자, 매일 15시간 이상 노동

차별과 빈곤으로 고통받기는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조선족 여성노동자도 매한가지다. 특히 숙식을 제공하는 식당, 가정집의 경우 정해진 퇴근시간이 따로 없어 주로 40-50대의 조선족 여성노동자는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5년 전 하얼빈에서 온 한동숙(가명, 50대)씨는 역삼동의 기사식당에서 매일 15시간 이상씩 일해왔다. 그러나 주인은 한 씨의 3개월 반 임금을 떼먹고 식당 문을 닫아버렸다. 한 씨는 "한국인이면 세 사람 쓸 일을 조선족 두 명으로 부려먹을 땐 너무 힘들고 서러워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며 울분을 토한다.

한국에 온 지 보름만에 어머니가 죽고, 재작년에는 남편이 죽었지만 한 씨는 집에 가지 못했다. 한국으로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떼인 천 만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한 씨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이동이 막힌 상황에서 이주노동자가 중간 브로커에 '갈취'당하는 돈은 보통 천만원 선. 그들이 받는 임금으로는 아무리 연장근로를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이 돈을 갚는 데 최소한 3년은 걸리고, 그만큼 빈곤도 '연장'된다.


위협받는 모성과 몸

착취와 차별은 여성이주노동자의 모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평등노조이주지부 소냐 씨는 "생리휴가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임신을 하더라도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면서 사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전한다. 미등록 여성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아이와의 가슴 아픈 생이별도 감수해야 한다.

태어난 후 한 달 내에 출국하지 않으면 아이 역시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이주노동자가 아이를 키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주여성인권연대 이금연 대표는 "최근 자녀를 동반한 외국인 여성노동자의 이주가 증가하고 있는데, 대부분 아이를 맡길 곳이 없거나 부담해야 할 돈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여성이주노동자의 문제는 한국의 여성노동자가 겪고 있는 문제보다 극대화되어 나타난다"라고 지적했다.

성폭력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주여성과 본국남성 사이에 벌어진 권력으로 인해 여성이주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그만큼 더 일상적이다.

지난 99년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온 소하나(인도네시아, 32세)씨는 "관리자들이 몸을 건드리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다"면서, "특히 밤에 술 취한 남성 관리자가 기숙사 방문을 치면서 '문열어! 문열어!' 하고 소리지를 때는 너무 무섭다"고 말한다. 게다가 여성이주노동자에 대한 성폭력은 불법체류 등과 같은 그들의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대부분 은폐되고 있다.

중첩된 차별, 폭력, 그리고 빈곤의 올가미에 갇힌 여성이주노동자의 삶은 한국사회의 척박한 인권수준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성이주노동자의 삶은 이주노동자와 여성 각각에게 쏟아지는 차별과 폭력을 곱절로 감당해야 함을 말한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 혹은 산업연수생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은 차별과 폭력에 여성이주노동자을 더 쉽게 노출시키고 있다.

때문에 여성이주노동자에게 여성으로서 또한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돌려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들에게 동등한 사회구성원의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허혜영/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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