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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두 아들 미래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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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친꽃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161.158) 댓글댓글 조회5,549회 작성일2004-05-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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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미래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경향신문 2004-05-13 16:27]


-한국+파키스탄 어떤 ‘코시안’가족-

 
염요한(9)·요셉(4) 형제는 ‘한국인’이다. 한국인 어머니 염동분씨(42)가 열달 동안 배불러서 한국에서 낳은, 이 나라의 어린이다. 국적? 물론 한국이다.


여느 아이들과 다른 점은 피부색 정도이다. 까맣다. 파키스탄 출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즉, 형제는 한국과 파키스탄의 피가 섞인, ‘혼혈’이다. 요즘에는 요한 형제를 다른 말로 ‘코시안(Kosian, Korean+Asian)’이라고 부른다. 코시안은 한국인과 동남아계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형제의 성(姓)은 어머니로부터 따온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모하메드 타릭(39). 1992년 2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왔다. 그해 경기 김포의 한 석재공장에서 일하면서 염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가정을 꾸렸다. 한때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그도 이제 엄연한 한국인이다. 지난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의 도장이 또렷이 찍힌 귀화 허가증을 받은 것이다. 도무지 안될 것만 같았지만 지난해 6월 까다로운 귀화시험이 폐지된 덕을 봤다. 그에게도 이제 13자리 주민등록번호가 새겨진 주민등록증이 생겼고 번번이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신고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그의 일자리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듯 3D 업종이 아니다. 지난해부터는 소규모 철강회사이기는 해도

파키스탄·방글라데시·인도 등에 대한 수출 딜러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성공한 귀화자’라는 말도 들려온다.


타릭은 귀화했다고 해서 사회적인 시선이나 대우가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열심히 일하고 임금을 떼인 적이 수두룩했다. 지금도 가끔씩 사람들이 나를 속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파키스탄 국적을 포기할 때 슬프기도 했지만 귀화는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며 “물론 파키스탄에서보다 더 많이 주어질 가능성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두 아들의 미래다. 별탈 없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지만 걱정도 많다. 특히 타릭은 아이들이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과 소외,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생활에 쫓겨 아이들에게 파키스탄 문화를 가르치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데 내가 한국에서 느꼈던 모멸감을 아이들이 벌써부터 느끼다니….”


아이들이 ‘당한’ 일을 털어놓아도 별다른 대꾸는 없다. 그저 잘 들어줄 뿐이다. 어쩌면 그에게 참는다는 것은 한국인 틈바구니에서 10여년을 살면서 몸에 배인 습성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앞으로도 계속 무시당한다면 아이만큼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키우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라고 했다.

 

염씨는 다르다. 당당하다. ‘혼혈’임을 숨기지 않는다. 요한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나 요셉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달려가서 따진다.


“귀화자와 가족이 느끼는 어려움은 결국 자신들이 나서서 푸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다른 애들이 놀리면 적극적으로 맞서라고 강조합니다. 숨어지내면 까만 얼굴이 하얗게 됩니까.”


다른 코시안 가족들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 쉬쉬하지만, 염씨 가족은 목소리가 필요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공익광고에 출연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광고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요셉이 주인공이었고 부부도 출연했다. 염씨는 “당시 박명천 CF감독이 막내의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많이 해, 아예 탤런트나 영화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며 웃었다.


부부의 자식교육에 대한 열성도 여느 부모 못지않다. “남들의 차별과 무시를 견뎌내려면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이는 학교수업이 끝난 뒤 피아노·컴퓨터·합기도 등 4곳의 학원을 다닌다. 요셉이도 한글을 읽을 줄 안다. 사교육비가 만만치 않지만 아깝지 않다고 한다.


“제가 처음 한국땅을 밟을 때에 비하면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이 많이 따뜻해졌어요. 우리 아이들을 보는 눈빛도 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타릭의 말이다.


〈글 안홍욱기자 ahn@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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