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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기고/‘노동자 국회의원’ 과 노동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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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친꽃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10.30) 댓글댓글 조회5,285회 작성일2004-05-0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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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노동자 국회의원’ 과 노동절 

[경향신문 2004-04-30]

오늘 114주년 노동절을 맞는 감회는 새롭다. 작년에는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법제화되었으며 올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하였다. 거리의 노동자들이 국회에 진출하여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나선 일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970년 전태일로부터 시작된 노동기본권을 향한 절규는 군부독재의 가혹한 탄압을 견디어내야 했다. 87년 민주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노동기본권만은 항상 예외였다. 제3자 개입 금지와 정치활동 금지, 공무원·교원의 단결 금지, 복수노조 금지 등 악법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이후 97년 겨울의 총파업으로 복수노조 금지, 3자 개입 금지가 철폐되었고 민주노조들은 합법화되었다. 98년에는 교원의 단결권이 회복되었으며 정치활동에 대한 족쇄도 풀렸다. 그후 6년이라는 시련의 시간을 거쳐 올 봄, 노동자들은 당당한 주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나섰다. 결국 그것은 헌법적 권리인 노동기본권이 비로소 이 땅에서도 자리잡기 시작하였음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아직은 갈 길이 더 먼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조선족 이주노동자는 지하철에서 외로운 삶을 마감하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체불임금 때문이었다. 십수만의 이주노동자들은 오늘도 단속을 피해 숨 죽이고 잠을 청한다.

또 공무원노동자들은 정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감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헌법적 권리인 정치적 자유가 교사, 공무원들에게는 여전히 제약되어 있다. 이 땅에서 공무원 총리는 군부독재로부터 20년 넘게 정치적 변신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지만, 하위공무원은 벙어리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참여정부에서 참여를 거부당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작년부터 줄줄이 죽음으로 항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주들은 전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불법파업 엄단’ ‘공권력 투입’ ‘손해배상청구’란 귀에 익은 낡은 곡조만이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파견노동자제도를 확대함으로써 유연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나서고 있다. 노동자들을 죽음에 몰아넣으면서 국가경쟁력을 높여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도대체 알 수 없다.

주 40시간 노동문제도 앞뒤가 뒤바뀌긴 마찬가지이다. 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한 대상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고의 장시간노동, 저임금노동이 일상생활인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것은 2007년까지 미루어져 있다. 대기업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주의 임금 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올 봄 임금교섭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의 민주노동당 띄우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민주노동당은 이제 거리에서 제도권 국회로 들어오라’ ‘무책임한 불법파업과 시위가 아니라 국민에게 책임지는 성숙한 정치세력이 돼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들의 주문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다. 어쩌면 협박일지도 모른다. 비현실적인 것은 의석 비율 3%인 민주노동당의 현실을 과장하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책임졌던’ 과거의 여러 제도정당의 정치행태를 닮으라고 조언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책임을 망각할 경우 ‘불법 엄단’의 칼이 다시 준비될 것이란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1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노동자 국회의원 한 사람만 국회에 있었다면’이라고 말하면서 불법파업의 실체적 정당성을 역설하였던 노동운동가였다. 그러나 작년에 그는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그렇게 실천한 바 있었다. 이제 노동자 국회의원 10명의 국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은 15년 후에도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주장할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이제야 비로소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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