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히드

내가 아는 자히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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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붑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조회1,073회 작성일2005-03-0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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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히드와 처음 만나게 된 때는 2000년 4월이었다. 마침 그날은 우리 형의 생일이었는데, 나는 지역의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의 성대한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장식물들로 무대를 꾸미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상당히 곤란해 하고 있던 중에, 한 낯선 사람이 오더니 순식간에 멋진 필체와 천 장식 등으로 무대를 꾸미기 시작했다. 이 다부지고 자그마한 체구의 낯선 사람이 바로 자히드였다. 그는 무대를 마술처럼 멋들어지게 꾸미고 나서는 특유의 끼를 발휘하여 음주가무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처음 자히드를 만날 당시, 그는 남양주의 어느 공장에 근무하며 거리상으로 좀 떨어져 있는 마석의 한 방글라데시 공동체의 일을 맡고 있었다. 곧 이어 그는 마석과 송우리에서 방글라데시 문화제, 축구, 크리켓 등의 스포츠 행사, 각종 친목회 등의 일들을 조직하며 열심히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나와 자히드가 일하고 있는 남양주 지역에는 마석과 송우리처럼 이주노동자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곧 우리는 방글라데시 협동회(Bangladesh Mutual Association)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이주노동자 상담, 친목회, 야유회, 산재 이주노동자 후원 모금 콘서트 등을 만들어 나갔다. 공장에서 매일 야근을 하는 나날 속에서도 우리는 시간만 나면 함께 공동체 일에 매달렸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공동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신적으로는 매우 풍성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우리가 해 왔던 공동체 활동만으로는 일터에서 자행되는 각종 임금체불, 퇴직금 미지급, 공장에서의 폭력과 폭언, 산업재해 등 이러저러한 노동탄압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작업장에서의 노동탄압에 직접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민주노총 평등노조 산하에 이주지부가 생기게 되었고 자히드와 나는 2002년 봄부터 이주지부 친구들과 활동하게 되었다. 자히드는 곧 다니던 공장을 그만 두고 의정부, 송우리, 포천을 아우르는 이주노동자 공동체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그는 이주지부가 주관하는 각종 집회와 행사에 동료들을 지속적으로 참여시키며 노조활동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이렇게 공동체 운동과 노조운동 병행하는 동시에 그는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 파병 반대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자히드는 90여명의 이주노동자 동지들과 함께 2003년 11월 15일에 단속추방 반대, 산업연수제와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도입을 주장하는 기나긴 명동성당 이주노동자농성에 돌입하게 된다. 이들은 명동성당 들머리에 친 텐트 속에서 지내며 혹한의 겨울과 삼복의 더위를 이기고 380일 동안 농성했다. 자히드는 끝까지 농성장을 떠나지 않은 몇몇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농성 중에 그는 주로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투쟁국장이 역할을 맡았다. 동지들이 하나 둘 출입국에 잡히고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질 때마다 힘 있는 발언과 몸짓으로 동지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곤 했다. 한편 그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들의 열악한 생활을 알면서도, 투쟁이 끝나서 일을 하게 되면 곧 돈을 보내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어머니를 설득하곤 했다. 그러나 농성이 끝나갈 무렵 자히드는 출입국에 잡히게 되고 어머니에게 한 약속은 지키지 결국 지키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고국의 돌아가게 된 그를 맞이한 것은 빚에 쪼들린 어머니와 아직 일할 나이가 되지 않은 남동생 한명,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 세 명뿐이었다. 열심히 투쟁한 결과로 더욱더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게 된 꼴이었다.



물론 단속 추방된 동지는 자히드 하나만이 아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가 단속 추방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직면해서 우리는 “추방된 사람들을 일일이 다 도와줄 수가 없다”는 식의 집단 논리로만 접근할 것인가?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그 희생에 보답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 밑으로부터의 이주노동자 투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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