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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유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1건 조회6,486회 작성일2004-07-1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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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 생태적 영성의 철학을 실천해온 사티시 쿠마르
글쓴이 : 김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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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9일과 30일 이틀 동안 원불교 종로교당과 녹색연합 사무실에선 비폭력과 생태적 영성의 철학을 걸어다니며 실천해온 녹색운동의 큰 스승인 사티시 쿠마르(Satish Kumar)를 만날 수 있었다. ‘서양의 살아 있는 간디’라 일컬어지며 ‘진리를 손에 안고 있는 형제’라는 뜻을 지닌 사티시 쿠마르는 녹색평론 등이 주최하는 ‘21세기를 위한 연속 사상강좌’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인도에서 유럽과 미국까지 8천 마일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둘러앉아 녹색운동의 큰 스승을 맞는 공손한 마음을 모아 큰절을 올리고 나서 잠시 동안 명상에 들어갔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걷는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던 것과 다르게 그의 첫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겸손함을 유지하고, 맑고 진하면서도 깊은 눈, 흰 수염, 깡마른 몸매이나 다부진 체격, 자그마한 키, 소박한 옷차림, 티 없이 환하고 온몸으로 반기는 웃음. 그의 어조엔 나이를 잊게 하는 열정과 분명함이 있었다. 첫 말문이 열렸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입니다. 자연을 알지 못하고 자연을 사랑하지 못하면 자연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는 평생을 거의 걸으면서 체득한 경험이라면서 자연으로부터 배우라고 권했다. “눈을 크게 뜨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변을 본다면 어느 곳을 보더라도 자연이 스승임을 알게 됩니다. 꿀벌들을 보십시오. 꿀벌은 꽃에서 꽃으로, 한 꽃에서 꿀을 조금씩 따면서 날아다닙니다. 꿀벌은 꽃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고 꽃과 꿀벌 사이에는 완전히 폭력 없는 관계, 해를 끼치지 않는 관계가 이뤄져 있습니다. 인간사회가 땅에서 무엇을 캐내거나 얻어낼 때 우리는 계속해서 빼앗고 마침내 바닥나고 고갈되어 그 자원이 끝장날 때까지 씁니다. 또한 우리는 맛있고 영양분이 많은 꿀로 변화시키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어냅니다. 인간이 인권을 가지고 있듯 자연 또한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동안 잊고 있던 우리네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맑고 또렷했다. 그가 걷기 시위를 시작한 때는 1960년대 말 냉전기에 핵 위협으로 전 세계적인 불안이 고조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사티시 쿠마르는 무일푼으로 인도에서 출발해 유럽과 미국까지 걸어서 8천 마일에 달하는 평화를 위한 녹색 순례를 감행했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도시인 모스크바와 파리, 런던과 워싱턴을 돈 없이 걸어다닌 것이다. 쿠마르는 8천 마일을 걸으면서 잊을 수 없는 일화를 소개해주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직전, 우연히 차(茶)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그 여성들은 차 상자 4개를 전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차들을 소련 서기장과 프랑스 대통령, 영국 총리 그리고 미국 대통령에게 전해주세요. 만약 핵폭탄 발사 단추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잠깐만 모든 행동을 멈추고 이 차를 한잔 마시라고 전해주세요. 차를 마시는 동안 폭탄 아닌 빵, 죽음 아닌 삶을 원하는 평범한 우리들을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생활 속에서 공경의 마음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쿠마르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걷는 것’과 ‘요리’를 제안했다. 걷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 사이에 진정하게 평화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조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거기에는 많은 메시지가 담긴다. 영국의 부당한 소금세 신설에 항의하기 위해 바닷가 200마일을 행진했던 마하트마 간디,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어내기 위해 워싱턴까지 걸었던 마틴 루서 킹, 인도의 토지개혁을 위해 20년 동안 10만 마일을 걸었던 비노바 바베,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갯벌을 살리기 위해 새만금 갯벌에서 서울까지 305km라는 먼 길을 걸어 삼보일배라는 고행을 실천한 성직자분들이 그랬듯이. 그들의 걸음은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가 되었다. 그는 요리 역시 자연과 연결해주는 것이라 했다. 유전자 조작식품인지, 유기농 재료인지를 생각하면서 직접 요리하는 것. 또 ‘독립을 원한다면 영국은 잊어버리고 물레질을 시작하라’고 말한 마하트마 간디처럼, 음식을 우리가 손수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외부의 의존을 줄이는 것이고 이것이 곧 자립경제의 출발점이 아닐까. 세계화 경제체제에서 간디의 스와데시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그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스와데시는 우리 모두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경제는 내부에서 외부로 뻗어가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것은 진정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외치는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장밋빛 약속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나면(사실 이미 들통나고 있지만) 스와데시의 교훈은 지속 가능한 경제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쿠마르는 확신했다. 일상생활에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현재 세계에는 두개의 강력한 힘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미국이고 나머지 하나는 세계 시민의 힘입니다.” 쿠마르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의견이 더욱 강해져야 하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중재할 수 있도록 유엔의 힘이 더욱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달라이라마, 투투 주교 등 세계평화에 기여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유엔 평화이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지구에 자기의 흔적을 가장 적게 남기는 것이 지구에서 평화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했다.

‘유엔 평화이사회’ 만들라
“많은 사람들이 소박한 삶을 이루고 있을 때만이 평화로운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 국가를 원료공급지나 상품시장으로 본다면 세계의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경험하고 있잖습니까. 전쟁의 씨앗은 경제적 탐욕으로 뿌려집니다.” 쿠마르는 우리나라에서도 걷기 순례를 할 뜻을 비쳤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을 넘어 평화의 녹색 순례를 했던 것처럼 기회가 닿으면 남한과 북한을 잇는 걷기 순례를 이 땅의 평화 실천가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절망과의 대결에 바친 생애 1936년 인도에서 태어난 사티시 쿠마르(Satish Kumar)는 9살에 자이나교 승려가 됐다가 간디의 실천적 가르침에 감복하고 종단을 떠나 18살에 간디의 수제자 중 한명인 비노바 바베와 함께 토지개혁운동에 참가했다. 토지개혁운동은 대지주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소유한 토지 일부를 땅 없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사회운동이다. 얼핏 보아 극히 비현실적인 몽상으로 비쳐짐직한 이러한 아이디어를, 비노바 바브와 그의 일행은 실제로 광대한 인도 대륙을 걸어다니면서 실천으로 옮겼고, 그 결과 400만에이커에 이르는 토지가 땅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1960년대 말 냉전기에 핵 위협으로 전 세계적인 불안이 고조되던 시절, 쿠마르는 동료인 프라바커 메논과 함께 세계를 걸어서 일주하는 ‘평화를 위한 순례’를 시작한다. 핵무기 반대시위를 정열적으로 주도한 고령의 버트런드 러셀을 본보기 삼아 무일푼으로 인도에서 출발해 사막과 험한 산과 폭풍우와 눈을 걸어 유럽과 미국까지 8천마일에 달하는 평화를 위한 녹색 순례를 감행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에선 감옥에 갇히고 미국에선 총에 맞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4개국 지도자들에게 ‘평화의 차’를 전달했다. 이후 쿠마르는 1973년부터 영국 남부의 하틀랜드라는 작은 마을에 정착한 뒤 30년 동안 격월간 환경잡지 <리서전스>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대안학교의 모범이랄 수 있는 ‘하틀랜드 작은 학교’를 세웠다. 또 국제 생태교육의 메카로 유명한 ‘슈마허 칼리지’의 프로그램 기획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슈마허 칼리지’는 처음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지은이 E. F. 슈마허의 생태적 시각을 조명하고 가르치는 강연들로 시작해 점점 국제적인 에콜로지 센터로 성장했다. 이곳에선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러브로크나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새로운 과학’의 철학자 프리초프 카프라 등 대안적 문화를 위한 새로운 지적·도덕적 토대를 모색하고 각 분야에서 이를 실천하는 지식인과 활동가들을 강사로 초빙해 3주간의 합숙 형태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동차를 거부하며 걸어다니는 쿠마르가 즐겨 하는 말은 “시간은 무한한데, 바삐 서둘러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다.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교수는 그에 대해 “걷기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더 큰 생명 공동체에 종속시킴으로써 진정한 행복과 자유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시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산업문명의 절망을 넘어 새로운 인류 문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 상상력을 주는 사티시 쿠마르의 이야기는 활자로도 만날 수 있다. <사티쉬 쿠마르>(한민사 펴냄), <버리고 행복하다>(산해 펴냄),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달팽이 펴냄)가 나와 있고, 생태잡지인 <녹색평론>에도 그의 글이 실린다.

이글은 한겨레21(2004.5.6)에 실린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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