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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주노동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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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조회3,262회 작성일2004-07-17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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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 이주노동자 문제는 결국은 돈문제이다. 한국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오는데 든 돈 한국에 밀입국하는데 드는 돈 이 돈은 본국에 남겨둔 가족들의 부채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채무자는 한국으로의 잠입을 알 선한 브로크들일 것이고 이 브로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이들은 바로 한국에서 보다 많은 돈을 벌어서 잘살아보겠다는 이주노동자 자신의 장미빛 희망이다. 이 희망은 강제 출국이라는 걸림돌에 걸려서 수포로 돌아가고야 만다. 그리고 결국 이 부채는 가족들의 생계를 망망하게 만든다. 아내와 딸 그리고 부모님 사둔내 팔촌의 돈까지 끌어와서 한국을 들어온 중국노동자들도 있다. 평생을 벌어서 갚아도 못갚을 돈이라고 한다. 동남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이 고학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필리핀 노동자일 경우는 특히나 그렇다. 그리고 이들은 막막해진 생계를 풀어나가기 위해 일부는 저항이라는 방법을 택했고 일부는 잠입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신촌에는 아직도 중국노동자들이 그리고 무수한 식당들에는 아직도 중국인 노동자들이 식당 종업원 노릇을 한다. 일자리 경쟁은 한국의 노동자들과 당연히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깍아 먹을 것이다. 노동조건과 복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점점더 조악해진다. 아마도 후Man이라는 이는 이러한 단말마적인 분노에 휘말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의 인권단체사회단체 노동단체는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나선다. 이 또한 결국은 돈문제로 이어진다. 회원확보는 이들에게는 곧 돈에 해당한다. 권력에 해당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맞을 것이고 나중에 돈으로 귀결된다. 그러니 생색내기 정도를 시도할 것임에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는 진보인가 ? 진보란 무엇인가까지도 연결지어야 할 것이다. 다름아닌 그 알량한 돈벌겠다는 환상을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이 더 이상 하지 않게하는 것 그 개꿈을 조속히 깨게 하는 것이 진보아닌가 IMF때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한국을 빠져 나간 사실 또한 주목하자 냉소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사태를 정확히 보자는 점에서 나는 냉소적인 문체를 구사한다. 왜 빠져 나갔는가 누가 나가라고 하지도 않았다. 한국이 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IMF가 끝나고 또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바로 브로커와 노동력을 수출하는 동남아 국가의노동부의 달콤한 광고 혹은 과대 광고에 속은 것이다. 그것이 방법이 아닌데도 말이다. 잘사는 방법이 분명아닌데도 말이다. 어차피 시장경쟁에서 노동자는 결국에는 지게 되어 있다. 노동자 뿐 아니라 갑자기 땅값이 올라서 돈방석에 오른 졸부조차도 결국에는 지게 되어 있는 시스템에서 돈 조차도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이 질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외국노동자의 유입은 한국의 노동조건을 전반적으로 악화 시켰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책인은 누구에게 있는가 일차적으로 동남아의 노동부와 한국의 노동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미빛환상에 속은 노동자 개인에게도 있기 마련이다. 자살은 살기가 힘들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감옥에 가치는 노동자들은 자살하지 않는 듯 하다. 그보다는 손배 가압류나 채무 노예가 되어 버린 이들에게서 자살은 더 많이 나타나는 듯하다. 이주노동자의 자살 또한 마찮가지 아닐까. 본국 진 빗을 갚을 아무런 대안도 보이지 않을때 그들은 자살을 했거나 투쟁을 택한다.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강한 이들이라면 잠행을 택하고 여전한 취로활동을 계속하는 듯 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전래없는 축적위기에 몰려 있다. 케인즈주의적인 시스템의 몰락이라고 봐도 무방할 그러한 축적 위기에 몰려 있고 그 축적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여전히 한국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는 방식ㅇ르 택한다. 이른바 노동의 유연화가 그것 아닌가. 그로인해 노동인구의 50%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신용카드의 남발을 통해 무너져가는 재벌들의 뒷돈을 챙겨준 것 또한 그 알량한 신자유주의 전략 아니였던가. 노동자들은 그로인해 더 이상 사업장 단위의 노조로의 저항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저항은 전국단위로 밖에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간혹 현대 자동차라는 공간에서는 사업장 단위로의 저항도 이루어 지고 있으나 그것은 그 공간의 노동운동의 전통에 의존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저항의 양태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 물론 이부분에서는 내가 틀리기를 기대한다. 그 보다는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농성과 같은 전국적인 대표성을 띠는 기동전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문제는 이 저항의 공동체가 얼마만큼의 자립 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여 주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 저항의 근거기가 해방터로 만들어져 가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을 가져야 한다는 점 그것이 전국단위 그리고 지구적 단위의 전략으로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 그것이 이른바 저항의 네트워크 전략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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