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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르쑈띠] 한번 써봤슈. 커멘트 좀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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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님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조회6,668회 작성일2004-04-07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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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내 일자리 뺏어간다’고 방방 뛰는 사람들에게


아래 이어지는 설명은 아주 단순무식한 버전이 되겠다. 내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이 각 사회노동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극한의 가난과 전쟁이었다. 19세기 페미니즘 담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규모의 ‘일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전쟁과 함께 나왔다. 그렇다고 그 전에 여성이 사회노동을 안 했냐?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계속해서 가사노동과 생산노동을 해왔다. 인정을 못 받았을 뿐이지... 마르크스의 [자본론] 1-상권의 ‘영국 노동법 변천사’ 부분을 읽다보면,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이 어떤 노동조건에서 일을 했는지 정말 구구절절하게 나와있다. (내가 ‘인간 맑스’에게 반한 것은 바로 그 챕터 때문이다.) 소위 ‘산업혁명’ 시절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성인남자보다 훨씬 싼 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견디어냈고, 이윤을 최대 이유로 삼는 자본가들(이들은 공장의 기계가 단 1시간도 쉬는 것을 아까워하며 어린아이들의 노동을 장려했다, 아이들이 노는 건 인성에 해악이 된다며.)이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노동력을 선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결과... 더욱더 많은 여성들과 더욱더 많은/어린 아이들이 노동전선에 나서야 했고, 또 한편으로는 ‘여자들은 집에 돌아가라’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 사이에 적대전선이 그어졌다.

보다 대규모의 여성들(중산층 포함해)이 사회노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그놈의 ‘전쟁’이다. 국가는 여성을 3류 시민으로만 대접했기에 병역의 의무 자체를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여성들은 남성들이 비운 사회 각 노동의 자리를 꿰차고 앉게 된다. 일부는 이렇게 신분상승이 된 것(?)에 고마워해 국가의 동원전선에 적극 협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침략전쟁에도 적극적으로 후방을 맡아 건전지로 치자면 충전기 노릇을 하며 국가에 충성했다.

승리던 패배던 전쟁이 끝나고, 여성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몰림에 시달린다. 물론 그 노동력이 온전히 가정으로 돌아갈 수만은 없다. 자본은 여성노동력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싫어하는 척하고 배척하는 척 함으로써 여성노동력의 가치를 낮게 매기고자 할 뿐이다. 그래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받아들일 테니까.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 사이에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후속결과다. 수많은 남성들은 여성노동자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무기로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여성이 능력을 인정받아 진급이라도 하게 되면... 

세기가 바뀌고 여권이 상승됐다고 하는 지금도 이 현상은 그리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외견상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비슷한 조건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기업 간부진에 여성의 숫자는 한심할 정도로 적으며, 국회의원 숫자와 사회 각 ‘지도층’이라고 하는 분야의 여성의 숫자는 턱없이 적다. 끝없는 견제와 경쟁에서 여성은 보다 상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남성들의 100배쯤 되는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자격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몇몇 업종들은 여전히 여성의 취업을 꺼린다.

아마도 이주노동자 운동에 결합하고 연대하는 한국인들의 숫자 중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노동조건과 자신이 처한 환경 그 자체가 이주노동자들의 그것과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통찰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먼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정리해고에서 가장 먼저 정리되는 여성들의 노동력은, 혹자들이 단순히 생각하듯 자본과 국가의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뜨거운 감자가 절.대.로. 아니다. 국가와 자본으로서는 결코 사양할 수 없는 것이 여성의 노동력이다. 다만 사양하는 척하고, 배척하는 척 하여 그런 위험하고 불안정한 위치에 묶어둠으로써 전체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치 저하가 일어나는 것은 여성의 노동력뿐 아니라 남성들의 노동력 마찬가지다. 남성 vs. 여성의 성대결 중 수많은 부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여성의 조건의 모순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기제, 즉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부터 태동되어 확대돼 왔지만, 이것을 엄청나게 대규모로 확대/재생산한 기제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렇기에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모순 극복을 목적으로 삼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전히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유효한 투쟁의 지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체제의 유지/강화는 단순히 남성/여성 노동자 사이뿐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내국인/외국인 노동자, 비장애인/장애인 노동자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런 수많은 변수들을 적용시킴으로써 인간의 노동력의 가치는 수많은 조건의 경쟁을 통해 그 가치가 하락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세련된 방식, 그러나 그 탄생부터 계속해서 써왔던 방식이 바로 노동자 간 다양한 차이를 이용해 차이를 더 크게 부각시키고 이것을 차별로 이어지게 만듦으로써 더 나쁜 노동조건을 만들어내고, 전체 노동조건을 더 나쁜, 더 나쁜, 더 나쁜 쪽으로 하향평준화를 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분쇄해 온 것이 바로 이제까지 노동운동의 역사다. 물론, 남성 비장애인 내국인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강성 노동운동은 수많은 약자들의 조건을 눈감아 오기도 하였다. 우리 당간부 최모씨가 아주 즐겨쓰는 도식화를 시도해 보자면,

                      최악조건의 노동자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의 노동자
                                          --------------------------> 노동운동의 방향
        착취의 방향 <-------------------------
                   

대강 이렇게 되지 않을까. 자본이 최악의 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을 기준으로 하향평준화를 시도해 왔다면, 노동운동은 최악 조건의 노동자들에게서 그 씨앗이 터져나오되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의 노동자들부터 혜택을 받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상향평준화를 이루려는 시도가 아니었나, 라는 것이, 무식한 내가 대강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며 느낀 소회다. (허접한 거 인정하니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비판/보충/첨삭 지도를 바란다. 단, 나는 무식한 사람이니 좀 쉽게, 쉽게...)

외국인들이, ‘불법체류자’들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한다. 그래, 일견 맞는 말이다. 바로 현장에서 내가 해고되고 그 자리에 소위 ‘불법체류자’들이 떡하니 차지하는 꼴을 볼 때의 개같은 기분이 드는 것, 그 이주노동자들이 더없이 밉게 느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당신이 ‘외국인들이 내 일자리 빼앗아간다’ 운운하며 방방 뛸 때, 당신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등 이른바 ‘좀더 나쁜 노동조건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 을 탄압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당신의 노동조건은 이미 수많은 다른 차이를 가진 노동자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위치다. 당신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위협을 받을 뿐 아니라, 당신의 조건이 다른 노동자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 질서를 만들고, 유지/강화하는 것이, 당신인가? 혹은 당신을 위협하는 다른 노동자들인가? 아니면 자본과 국가인가?

원치 않은 경쟁에 몰린 것이 당신 잘못이 아니듯, 이주노동자들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좀더 나은 노동조건, 그리고 좀더 나은 노동가치를 찾아 움직이는 것뿐. 그것이 당신 잘못이 아니듯, 이주노동자들의 잘못도 아니다. 문제는 국가와 자본이 여성노동자의, 장애인노동자의,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을 강하게 원하는 이유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노동력의 가치를 서열화하는 그 구조, 원치 않는 경쟁과 갈등관계를 만드는 그 시스템 자체이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이 시스템의 거짓말들을 가리기 위해 또다시 수많은 거짓말들이 만들어진다. 여성은 머리가 나쁘다, 체계적인 일을 못 한다, 방향감각이 없다, 힘이 약하다, 사회성이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의 여성들을 모두 강간할 것이다... (이런 거짓말들이여, KIN!)

우리가 왜, ‘더 나쁜 조건의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하는가의 답은 바로 여기에 놓여있다. 숨어있지 않다. 다만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눈을 가리려 드는 것뿐.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인용한 그람시의 말을 재인용해보자면, ‘그들의 헤게모니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 그 헤게모니 안에서 행복하다면 할 말이 없지만.’
 

* S.C.D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4-08 11:41)
* S.C.D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4-09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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