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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씨의 이야기: 한 이주노동자의 한숨 - 고용허가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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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님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2건 조회8,070회 작성일2004-04-2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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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진의 맨 앞에 계신 분을 아실지 모르겠어요. 초반 농성에 결합하셨다가 몸이 안 좋으셔서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로 가셨고, 치료를 받으면서 센터의 준활동가로 활동중이신 헉씨이십니다. (헉씨 뒤로는 마붑씨와 하십씨가 보이죠? ^^) 저는 지난 번 일일호프 때 헉씨와 인사를 나누었어요. 아래 글은 헉씨가 말씀하신 걸 구술로 풀어서 정리한 글입니다. 센터 홈피에서 퍼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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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미소가 멋드러진 헉씨가 오늘은 사뭇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있다. 그냥 편하게 얘기하라고 몇 번을 말을 해주어도 헉씨는 그냥 다음에 한국말 쓰는 친구에게 써서 가져오면 안되느냐고 걱정스레 되묻는다.

헉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지 8년을 넘는 이주노동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이번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한국체류 4년이 지난, 등록이 거부된, 미등록이주노동자이다. 덕분에 헉씨는 일하던 가구공장에서 사장님이 ‘불법체류 외국인 고용하면 벌금 2천만원 물어야 한다며 나가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짤렸다’.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헉씨는 지난 11월부터 시작된 명동성당 농성단에서 2개월을 지내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울 한 데에서 추위를 견디며 몸이 안좋아져 센터로 복귀해 쉼터에서 쉬고 있는 중이다. 헉씨는 늘 ‘고용허가제 잘못됐어. 노동자 힘없어’ 하며 절망스러워 했고 분개했다. 그런 그가 궁금해 그에게 물었다. ‘길이 어디에 있는가?’

저는 방글라데시에서 1996년에 왔어요. 산업연수생으로 와서 공장에서 일하면서 1년 동안 야간까지 일해서 40만원, 45만원 받았어요. 1년이 지나도 45만원, 50만원 받았어요.연수생이라 월급 쪼끔 받았어요. 2년 동안 일해서 천만원 벌었는데, 그 때 IMF왔어요. 달러가 많이 올라서 그 돈 다 썼어요. 일하던 공장에서도 일이 없어서 나 다시 연수생 사무실에 보냈어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서 55만원 월급 받았어요. 옷 염색하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한국사람들이 나쁘게 말햇어요. 공장장님이 씨발, 새끼야, 헉 이리가, 저리가!! 맨날 나한테 그랬어요. 손 들고 막 때릴려고 그랬어요. 그래서 한국사람들하고 말로 싸웠어요. 그리고 회사 바꿨어요.

그리고 가구공장에서 일 해서 이때까지 일했어요. 가구공장에서는 불법됐어요 연수생의 기한은 1년이고 연장이 3번까지 가능하다. 결국 3년이 지나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불법체류를 감행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3년간의 연수생 기간을 보내고 본국으로 돌아갈 확률은 매우 적을 수 밖에 없다. 앞서 서술했듯이 연수생의 기간동안 받을 수 있는 급여가 50만원이 채 안되었다. 그 돈을 아무리 모은다고 하더라도 한국으로 오기 위한 송출비가 500만원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송출비를 위한 빚을 갚고 다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연수생 기한이 만료된 이후 불법으로 한국에 체류하면서 계속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

고향에 가면은 한국에 올 수 있나 (한국사장님하고) 얘기했는데 그게 안돼서 불법으로 가구공장으로 도망갔어요.  이때는 아침 8시부터 일해서 저녁 6까지 일해요. 월급 85만원 받았어요. 빨간날은 다 일 안해요. 연수생일때는 다 일했어요. 몸 좋고, 월급도 많아요. 먼지 많이 먹고, 본드 그런거 안에 들어가서 목하고 기관지, 숨쉬는거 안좋아서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 갔다와서 돈 많이 들어서 쪼끔씩 약 타다가 쪼끔씩 약 먹었어요. 사장님한테 얘기해서 다시 일 바꿔줘서 일 했어요. 헉씨는 가구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심한 먼지와 본드냄새를 흡입하는 과정에서 기관지가 몹시 안좋아졌다. 현재 숨쉬기가 힘든 상태여서, 산재로 추정되어 진료중에 있다.
 
그런데 작년 2003년 11월에 불법 다 가야돼 했쟎아요. 그런데 나 돈 못 받았어요. 어떻게 가요. (돈 못 받은 공장에서) 일 한 지 한 달 15일 됐어요. 사장님 와서 말했어요. ‘너 이 공장 나가, 너 이 공장에서 일하면 나 벌금 2천만원 줘야돼. 다른데 가. 다른데 갔다가 와서 돈 받아’. 그런데 나 그때 어디로 가야돼요. 갈 데 없었어요. 갈 데 없어서 명동성당에 들어갔어요.

지금은 제가 생각했는데요. 사람들 이렇게 연수생으로 와서 돈 못받아가지고 불법으로 만들어가지고. 누가 불법 만들었어요? 사람들 이 나라에 와가지고 돌아가 잘 먹고 잘 사는거 생각할 수 있으면 좋은데요. 누가 이렇게 했어요? 지금 저는 고향에 가고 싶은데요,두 달 동안 농성단에 있어가지고 아무것도 받지 못했어요. 한국에 있어가지고 돈 많이 벌어서 고향에 가가지고 어떻게 잘 먹고 잘 살아 생각해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우리 한국말 많이 배워서 이나라 문화 많이 배워가지고 돌아가면은, 언제나 고향에 돌아가 잘살아 잘먹어 할 수 있는데요. 한국 사람들한테 때리지 마세요. 월급 주세요 이런거 알아가지고 돌아가면은 한국사람 좋은 사람인데요 얘기 해 줄 수 있는데 할 수 없어요. 우리 방글라에 가서 비즈니스하거나 공장하면, 기계 사와야 돼요. 그럼 한국에서 사오고, 모르는거 한국사람 와서 도와줄 수 있어. 그런데 너 가! 이러면 한국사람한테 말하기 싫어. 한국 손해야. 한국사람 그거 몰라요. 고용허가제 이거 만들어서 잘못됐어요. 바꿔야돼. 5년 넘은 사람들 있어야돼. 5년 넘으면 한국말 잘 해. 얘기 잘 돼. 일하는거 좋고, 사장님도 좋아요. 방글라 가서도 잘먹고 잘살아 한국사람이 도와주고 한국사람 또 돈 벌수 있어. 농성단에서 계속 싸웠는데요 아무것도 받은게 없어서 고향에 가야돼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노동자 힘 없어...

절망스러운 말 뒤에 헉씨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들 얘기를 하며 이렇게 힘든거 가족들이 모른다며 속상해 하기도 했고, 8년여 한국에 있는 동안 동생들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지만 보지 못했다며 안타까와 하기도 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이주의 경험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헉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했다. 고향에 돌아가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헉씨. 본인이 선택한 귀향은 아니었지만, 체불된 임금을 받는대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며 이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헉씨가 진정 건강한 노동자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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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재옥님의 댓글

최재옥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힘들게 사시는 농성단 식구들 얘기 들을때마다
한국사람이지만 정말이지 한국을 원망하게 되요...ㅠ.ㅠ

^^ 다큐님의 댓글

^^ 다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자료 좀 보려고 들렀다가 이런 저런 글들에 매료되어 계속 눌러 있네요-
근데 마붑 동지 뒤에 계신 분은 하십씨가 아니라 핫산씨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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