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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블랑카와 민스트럴 쇼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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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마힐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조회6,535회 작성일2004-04-1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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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 몇 개가 올라와서 알게된 사실인데 요즘 '블랑카'라고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를 패러디한 개그가 인기를 끈다나요. 우선 한번 보시고들 이야기합시다.




이걸 본 사람들의 반응들이 참 다양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인종주의적인 모욕감마저 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재밌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나마 이정도로 관심을 끄는 게 어디냐고 합니다. 제가 듣기론 바로 이 편 생일빵 방송 후에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쳐서 내용을 사적인 생활 중심으로 바꿨다고 하더군요.

Dockstaders.JPG

제가 이걸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모르겠다는 거였습니다. 비교할만한 사례가 될 지 모르겠지만 미국 팝 컬쳐의 오래된 역사를 들춰보면 이와 비슷한 희한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s)라고 하는데 주로 백인배우들이 얼굴에 껌정칠을 하고 나와서 흑인들의 생활을 주제로 흑인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뮤지컬의 한 양식이라고나 할까요. 민스트럴 쇼의 기원은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이전 남부 농장 지역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흑인노예가 극에 출연하는 것은 당연히 금지되어있었기 때문에 백인 배우들이 얼굴에 흑인 분장을 하고 흑인 행세를 하는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연출되었던 모양입니다. 극의 내용은 주로 순진하고 멍청한(?) 노예들이 그저 하루가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노래하고 춤춘다는 거에다가 몇가지 에피소드 (예를 들면 수박 서리, 연애), 그리고 흑인 방언을 섞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였는데 백인들은 물론이고 흑인들도 가끔 이 연예 오락을 즐겨 보았다고 하네요.

minstrels1.jpg

민스트럴 쇼가 미국 전역에 진출하게 된 건 남북전쟁 이후였습니다. 전쟁 동안 남부군의 비공식 노래였던 '딕시(Dixie)'가 민스트럴 쇼에서 나올 정도였다니까 그 인기도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전후에는 패전한 남부 농장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으로 인기를 모으다가 흥행이 되기 시작하니까 미 전국 투어도 나서고 영국까지 진출했다고 합니다. 웃기는 건 이 시기부터 은밀하게 흑인배우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흑인배우들 얼굴색이 석탄 색깔처럼 충분히 까맣지가 않아서 흑인들도 껌정칠을 얼굴에 했다네요.

이후에 민스트럴 쇼는 19세기 초까지 미국의 팝 컬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자기 글에 '오래된 흑인 오락'이라고 일컬었고, 우리가 잘 아는 '오 수잔나'같은 노래들도 민스트럴 쇼의 라인 중 하나로 쓰였다고 합니다. 1910년대에는 흑인 분장을 한 영화까지도 만들어졌는데.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주디 갈란드, 그리고 빙 크로스비같은 배우들도 얼굴에 까망칠을 하고 영화 출연한 적이 있답니다.

민스트럴 쇼를 바라보는 미국 내의 시각도 다양합니다. 한 흑인 비평가는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미국 뮤지컬 역사 중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이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문화인류학자 그룹은 Cultural Hybridity(이걸 뭐라고 번역하는지 모르겠네요. 잡탕 문화 정도 될라나)의 시각에서 접근합니다. 이후 흑인 음악과 춤이 백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과정들을 보자는 거지요. 좀 심한 사람은 백인 재즈 피아니스트, 백인 래퍼 같은 사람들이 민스트럴의 흑인분장 배우와 뭐가 다르냐고 까지 합니다.

중요한 건 민스트럴 쇼의 이야기들에서 보이듯 인종차별주의라는 것들이 문화적 코드로 읽힌다는 겁니다. 물론 식민지에서 끌려온 흑인노예의 강제노동이라는 정치경제적 분석도 뒷받침되어야하겠지만 이와 동시에 '인종'이라는 것이 문화 속에서 때로는 '의식' 아래의 레벨에서 작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지요. 다시말해 치밀한 논증의 결과로 인종주의 부리는 게 아니란 겁니다. 인종주의같은 모든 종류의 차별이 어떻게 무의식 수준으로 몸에 각인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전에 한국에서 새로온 여자 유학생이 무서워서 지하철을 못타겠다고 하더군요. 시커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더 웃기는 건 한달 후에 그 여자유학생의 남편이 와서 지하철을 타보고 막 화를 냈답니다. 당장 차 사라고...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전에는 전라도 사투리 듣기만 해도 싫어요 이러는 사람들도 많았고, 전라도에서 온 사람들은 서울 올라와서 일년만 지나면 사투리 싹 없어지는데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은 10년이 가도 사투리 쓰더라 뭐 이런 말들도 있었지요. 전에 귀순용사 전모씨가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고 우리나라 여자 개그맨이 북한 여성 흉내를 낸적이 있었죠. 그리고 합창단 흉내내면서 오데로 갔나 이런 것도 했지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것도 우리나라의 민스트럴 쇼가 아니었나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차별의 대상들을 희화화해서 조롱하고 지배자들, 그리고 지배자의 사상적 노예들끼리 즐기고 웃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상당히 구역질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면 또다른 견해는 그동안 철저히 무관심 혹은 금단의 영역에 있던 것들이 가시화되는 것만 해도 어디냐라고도 하지요. 이런 두 가지 상반되는 견해 안에서 우리는 중요한 걸 놓치면 안됩니다. 인종(민족, 지역)주의는 오랜 학습효과로 인해 몸에 각인되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지만 그것의 철거과정은 매우 의식적인, 하지만 무의식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투쟁의 과정이라는 거지요. 따라서 어떤 입장에서 블랑카를 볼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본 후에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를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요즘 선거 결과를 놓고 지역주의 이야기가 많더군요. 지역주의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몇세대가 걸쳐서 싸워야 사라질까 말까 하지요. 벌써 한 세대 넘게 싸워왔지 않습니까. 단순히 어느 정당이 어디서 당선되고 이런 걸로 지역주의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 죽은 것같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작동하는 게 지역주의입니다. 호남표, 영남표의 '어느 정도'가 지역주의의 발로인지 아닌지는 논증이 안됩니다. 거기서 몸을 섞고 사는 사람들은 알겠지요.

그리고 만약 본인이 지역주의가 간절히 절멸되기를 바란다면 마찬가지 이유로 인종주의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과 노력을 보여야합니다. 왜냐면 무관심은 또하나의 댄디한(?), 쿨한 인종주의일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라크에서 죽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이주노동자 현실에 대한 무관심. 이런 것들 알고보면 다 인종주의적인 겁니다.

붙임: 민스트럴 쇼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A History of the Musical, Minstrel Shows (by John Ken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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