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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운동하고 있다 : '사회운동적 노조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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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마힐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1건 조회1,980회 작성일2004-04-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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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니어리(Michael Neary) 영국 워릭대학 교수/사회학

번역: 권순원 미국 Cornell 대학 박사과정·오건호 민주노총 정책부장/사회학 박사





1. 들어가며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노동운동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노동사회가 세계적으로 재편된 결과, 조직노동계급(the organised working class)은 사회 이행의 진보적 담지자로서 인정되던 과거의 지배적 지위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전통적 노동조합주의(trade unionism)의 위기일 뿐 만 아니라 진보적 사회세력으로서 노동자 또는 노동(labour) 개념과 그 실체에 대한 이해방식에도 동일한 위기를 초래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해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정치적 기틀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가 실천적 투쟁과 지적 작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우선 노동의 범주가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것이어서 다양한 신사회운동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주장들(Touraine, 1981; Offe, 1985; Hirsch, 1988)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아울러, 사회적 갈등이 공장의 담을 넘어서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노동이 진보의 담지자로서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회주의와 신사회운동 그리고 이론가들이 제출하는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에 상응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이론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Adkin, 1999: 190).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 혹은 '새로운 사회적 노조주의'(new social unionism)라는 개념을 통해 진보적 사회세력으로서 노동과 노동조합주의를 복원하고자하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새로운 주장들을 그 자체의 내적 논리를 중심으로 검토하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루게 될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맑스주의적 문헌에 근거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필자 또한 맑스주의 사회이론을 분석의 기초로 삶을 것이다. 필자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지적 기획과 그것이 기초하고있는 노동운동의 정식이 너무나 정적이고 일차원적이서 새로운 사회주의적 패러다임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사회운동이론(social movement theory)이 논리적 근거로 삼고 있는 사회에 대한 해석은 노동에 대한 맑스주의적 이해(理解)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임을 밝힐 것이다. 따라서 나는 맑스의 저작과 이 문제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논의들(Postone, 1993; Negri, 1989; Bonefeld, 1995; Cleaver, 1999; Holloway, 1995; Taylor, 1999; Dinerstein, 1997)을 기반으로 하여, 노동운동(labour movement)이라는 개념보다는 '노동이 운동하는 방식(the way in which labour moves)'에 근거해서 노동에 대한 내 자신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이다. 나는 이미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겪어왔던 퇴조뿐만 아니라, 유럽 및 기타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투쟁들을 판단기준으로 삼아 이론적 논의를 예증할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저항들은 신사회운동도 아니고 전통적 형태의 조직노동운동도 아닌, 실상은 자본주의 논리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투쟁일 수 있다.





2. 이른바 '새로운 형태의 노조주의'론 비판



하나의 신사회운동으로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나 노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한 작업은 최근에 간행된 세 권의 저작에서 발견된다. 워터만(P. Waterman)의 논문, 「새로운 사회적 노조주의 :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새로운 노동조합 모델」(1999)과 무디(Kim Moody)의 『린 생산 체제하의 노동자들 : 국제경제속의 노동조합』(1997), 그리고 켈리(J. Kelly)의 『노사관계에 대한 새로운 고찰』(1999)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저작들은 사회운동을 기획함에 있어 각각 상이한 정도의 열정과 접근방법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 진보적인 사회사상을 통해서 그리고 노동운동 밖에서 발전해 온 이행의 프로젝트에 그들 자신을 접목시켜 노동운동을 재창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어서 나는 우드(Ellen Meiskins Wood)가 노동의 관점에서 제기한 비판적 논평을 위의 세 저작과 함께 평가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노동과 신사회운동의 연계에 관한 이러한 주장들은, 노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노동이 운동하는 역동적이며 근대적인 방식을 반영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할 것이다.



존 켈리(J. Kelly)는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거나 또는 노동운동이 '새로움'으로 표상된 신사회운동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는 견해들을 부정하고, 또한 '그 새로움'이 기초하고 있는 포스트모던이론에 대해 어떠한 신뢰도 보내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기존의 노사관계이론이 노동을 연구하고 정식화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지금까지 지배적인 중범위이론들, 즉 노동과정연구의 서술적 성격(description), 작업관행연구와 정책연구의 제도적 성격 등에서 입증된 것처럼, 활기를 잃고 깊은 늪에 빠져버린 노사관계 연구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노사관계를 맑스의 사회이론과 더욱 밀접히 연관시켜 이론화한다. 여전히 켈리는 '신' 사회운동의 경험과 존재에 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신사회운동으로 발전한 연구들 가운데 맑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틸리(Tilly)의 동원이론(mobilisation theory)에 커다란 관심을 보인다.

켈리는 사회운동에 기반하는 이 이론을 통하여 사회운동이 실제로 노동운동을 압도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가 동원이론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어떻게 개인들이 사회적 행위자로 전화되고 집단적 행동에 참여하는지에 관하여 동원이론이 중요한 시사를 주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관심의 초점을 교섭구조나 작업장내 제도적 장치 등과 같은 좁은 영역으로부터 노사관계 내 권력의 작동과정과 사회적 관계로 전환시킨다. 켈리는 동원이론이 이러한 과정 및 관계들을 관찰할 수 있는 구조적 틀(a structural framework)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의 출발점은 '자본주의적 노동에 내재한' 부당함(injustice)이며 나아가 노동자들이 그것을 정의하고 대항하는 방식에 관련된다. 거기에, 켈리는 동원이론을 기존의 장기파동이론(콘스탄티노프의 파동이론)에 연계시킨다. 켈리는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리듬과 밀접히 연관되어 예측가능한 유형들로 뒤따른다고 주장한다. 노동의 힘(the power of labour)은 경제적 순환의 상승국면에 증가하며, 반면에 국가와 고용주들이 조직노동부문을 반동원하는 시기인 하강국면에는 감소하게 된다. 그가 수집한 증거와 현재의 경제적 순환국면을 근거로 판단하면 지금 전통적인 노동운동은 회생의 분수령에 서 있다는 것이다.



피터 워터만(P. Waterman)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를 민중주의적이고 제3세계주의적인 선입관이라며 비판하고, 그것을 '새로운 사회적 노조주의(new social unionism)'라는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한다. 노동운동의 기존 전통에 근거해, 워터만을 비롯한 몇몇 이론가들(Melucci, 1989)은 사회진보를 일에 기반한(work-based) 목표라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야심찬 프로젝트로 파악한다. 워터만은 자본주의내 신기술 혁신의 결과, 노자관계(capital/labour relation)의 중심성이 감소되고 일(work)이 더 이상 주체들의 핵심영역이 되지 않는 세계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노조주의라는 개념이 보다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노동분업의 국제적 재편 같은 급격한 변화들이 노동자의 일국적 조직들을 파편화시키고, 자본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이것은 자본을 비계급적 동맹과 다양한 사회적 적대에 더욱 취약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자본관계(capital relation)의 중심성이 감소된 반면, 인간사회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발생하는 모순의 중요성은 증대하였다. 정치적 행위의 동기가 맑스주의적 경제 환원론으로부터 설명되지 않고, 실상은 그 역의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즉, 현재의 경제적 갈등은 다양하게 결합된 민주적이고 민중적인 요구들에 기반한 정치적 투쟁에 의해 오히려 결정된다. 이제 갈등은 경제와 정치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체, 나아가 국가간 경계를 가로질러 확장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만일 노동자 중심의 운동이 새로운 대안적 사회운동이나 참여민주주의와 같은 진보적인 조직 형태들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 중심의 운동은 주변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Melucci, 1989).

그러나 새로운 사회적 노조주의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워터만은 새로운 사회적 노조(social unions)들에 대한 명쾌한 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대신에 그는, 이미 스스로 인정했듯이, 노동조합과 대안적 신사회운동의 경험에서 얻은 이론화되지 않은 여러 명제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명제 목록에는 관련집단과의 대화를 통하여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투쟁의 필요성도 포함되어 있다. 즉, 확장된 민주주의와 생산물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유연하고, 혁신적이며, 개방적이고 비권위적인 조직 형태들에 기초한 비노조적이고 민주적이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정치 운동과의 결합 강화 등이 그것이다.



킴 무디(Kim Moody)는 1990년대 전세계적 규모로 일어났던 전투적 노동운동의 영웅적 부활에 대해 훨씬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무디는 자기 존립의 근거를 극도로 상실한 현재의 상태로부터, 그리고 노동의 국제적 분업에 수반하는 생산과정의 변화가 노동운동의 분절화 및 희석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 조류로부터, 사회주의와 노동조합운동을 구출하고자 한다. 무디는 남아프리카, 브라질 그리고 기타 제 3세계 지역의 노동운동으로부터 차용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social labor unionism)'라고 하는 개념을 통하여 노동운동을 구하고자 한다. 무디는 국제화의 압력이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정치운동을 강요함에 따라, 세계 각지(캐나다, 프랑스, 한국, 남아프리카, 브라질 등)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계급대립의 분석을 통해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진보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는 노동계급의 모습이 자본주의의 조직적이고, 지리적이며, 기술적인 변화에 따라 변해왔다고 주장한다. '린 생산'이라는 개념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이러한 변화들은 노동계급에게 대량실업의 공포로부터 야기된 수동성(passivity)과 같은 어려움을 부가하지만, 아울러 이 장애물에 맞서도록 만들기도 한다. 세계화의 압력은 남부 산업지구의 폭발적인 저항을 야기했고, 이것은 다시 취약했던 북부의 노동운동을 고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된 노조주의(organised unionism)의 전통적인 관념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권력의 원천으로서 노조민주주의를 강조한다. 무디는 자본주의에서 정치와 경제의 분리에 의해 형성된 이분법적 투쟁형태가 초래한 치명적인 틈을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생태학적 문제에서처럼, 사회적 이슈들로 광범위하게 묶여진 계급투쟁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에 있어서 노동조합은 다양한 사회운동들과 연합하여, '선거 연합이나 일시적 동맹보다 훨씬 강력한 연대망을 형성하는 계급적 전망과 내용들'(Moody 1997, 276)을 제공한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계급적 행동을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취약한 집단들을 동원하기 위하여 피착취자중 가장 강력한 집단인 조직노동자를 활용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요구는 단지 임금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사회적 의제들에 기초하여 훨씬 강력한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조직된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새로운 산업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황폐화된 비참한 삶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계급운동중의 일부일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운동은 작업장 밖으로 확장된, 매우 민주적이고 전투적이며, 국제주의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으로서 공식적인 노동조합 조직구조에 기초하기보다는 현장의 평조합원 활동가들(rank and file activists)에 기반한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노동계급의 다른 부문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서만 노동계급과 피억압집단의 사회적 권력을 확대할 수 있으며, 구좌파의 정치적 후퇴에 의해 야기된 정치적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이러한 길을 통해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확장된 운동(a broader movement)의 대표자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 하게 된다.



한편 우드는 노동운동이 신사회운동과 신사회운동에 근거하는 이론화작업에 너무 밀접히 연계되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그녀는 대략 70년대부터 시작되는, 그녀가 '새로운 참사회주의(new true socialism)'라고 언급한 신사회운동의 지성사를 서술하면서, 신사회운동의 이론들과 맑스주의 유물론이 본질적으로 상이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녀는 신사회운동이 1968년 이후의 사회주의적 이론화에 내재한 문제들과 조직노동에 의해 적절하게 설명되지 못한 다양한 잇슈들에 주목했지만, 맑스주의에서 벗어나 사회변동의 담지자로서의 노동계급을 거부하면서 '문화혁명'(cultural revolution)을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알튀세(L. Althusser)와 플란차스(N. Poulantzas)에 의해 그 기초가 놓여졌으며 현재는 라클라우(E. Laclau)와 무프(C. Mouffe)로 대표되는 포스트 맑스주의 그리고 포스트 구조주의 경향에 신사회운동이 토대를 둠으로써 사회적 관계가 담론적, 헤게모니적 관계로 탈물질화되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신사회운동은 맑스주의의 경제주의와 계급환원론에 기초한 정통적 본질주의(orthodox essentialism)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계급투쟁을 사회주의적 프로젝트에서 삭제해 버렸다는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들은 물질적인 이해관계에 연루되어 있는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존재로서 묘사되기도 한다(Gorz, 1982).

신사회운동의 프로젝트에 있어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는 필수적인 상응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노동계급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있어 특권적인 지위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1968년의 갈등은 투쟁이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생산과 착취의 관계가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는 더 이상 투쟁의 중심기초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경제적 제 관계의 중심성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의 지배(dominance)에 의해 대체되었다. 대신에 민중들과 그 동맹세력들의 다양한 대중주의적 문화적 요구에 기초한 사회주의운동이 등장하였는데, 이 운동은 정통 맑스주의가 상정하였던 단일하고 통합된 주체보다는 오히려 다원주의적 주체에 기반한 것이다. 따라서 신사회운동이 표방하는 차이의 정치학(politics of difference)은 사회의 혁명적 이행보다는 자본주의 국가의 급진적 민주화를 통하여, 즉 보편적 인간의 요구, 윤리적 목표, 합리적 원칙에 기초를 둔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우드는 신사회운동이라는 사회세계 안에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신사회운동의 세계에서는 단지 담론과 이데올로기가 정치를 해체하고, 자본과 노동의 직접적인 적대에 기초해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들을 결정하게 된다. 즉, 모든 사회적 이해관계와 정체성(identity)들은 담론의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협상가능한 의제가 되었고, 노동계급은 다양하게 구성되는 담론영역으로 소멸해 버렸다. 자본-노동 관계는 더 이상 사회 구성에 있어서 근본적인 관계가 아니게 되었고 따라서 노동계급은 다른 집단보다도 더 강하게 착취관계의 폐절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 계급은 이제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한가지의 집합적 아이덴터티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논리적인 추론도 역사적인 호소도 소용없게 된다. 실제로 이 두 가지는 우드가 주장하는 대로, 단순한 병렬과 추측, 그리고 다양한 분절과 절대적 우연들 속으로 용해되어 버렸다. 그 안에서 사회주의적 프로젝트는 이제 사라진다. 신사회운동에 의해 제시된 프로젝트는 형식적 민주화의 확장을 통한 자본주의의 완성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상대적으로 비적대적인 제도적 개혁으로 변형되었다.

우드는 단순히 추상적인 도덕률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권력구조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정치적·사회적 목표들과 노동계급을 연계시키고자 한다. 그녀는 비타협적이다. 그녀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명백한 목표와 행위자를 가진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노동계급의 이해와 투쟁속에 구현되는 한 동시에 일반적인 이해(general interest)와도 연계를 갖는 것이다. 우드에게 있어서 노동계급운동만큼 자본의 권력에 도전해 왔고 여전히 도전할 수 있는 사회운동은 어디에도 없다. 즉 노동계급은 "그 자신의 이익이 계급관계의 폐절없이는 완전히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내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계급없는 사회의 가능성을 담지하는 유일한 계급"이다. 생산과 착취관계속에서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 덕분에,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적 이해관계, 즉 생산의 직접적인 담당자-자신들-에 의한 생산의 비계급적 관리를 공유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폐절에 있어 핵심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집합적 노동자들은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의 자율 조직에 의해 구성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내에서 사회주의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주체가 될 것이다.

우드는 즉자적인 계급이익을 넘어서서 정치를 확장하기 때문에 신사회운동과 연합할 수 있다는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신사회운동이 계급정치의 장을 뛰어 넘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집합적 노동의 이해는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정치운동에서 지도적인 지침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신사회운동이 도덕적 힘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열망을 산출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해방과 삶의 질에 관한 사회주의적 개념이 확장되어야 함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투쟁과 사회주의 사이에는 어떠한 단절도 존재해서는 안되며, 또한 자본주의체제가 인간해방을 가로막는 근원적인 장애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도 안된다고 역설한다. 사회주의는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될 수 있지만 이 구성요소들은 모두 계급이해에 복무하고 노동계급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계급투쟁의 기구로서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노동운동에 대한 설명들―우드의 주장을 포함해서―에 있어 중요하게 확인되는 것은 이제 투쟁이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 전 사회의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운동과 이에 관한 연구방법들을 분석함에 있어서 역사적이고 국제주의적 관점의 중요성과 동시에 계급투쟁의 장으로서 사회적 수준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드의 애착은 제반 사회운동에 어떠한 이론적 혹은 실천적 중요성도 부여할 수 없게 한다. 그녀는 또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자들이 신사회운동의 정치이론에 무비판적으로 포섭될 위험성을 환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놀라운 사실은 지금까지 검토한 모든 연구작업들이 공장과 사회를 연계시키는 이론적·실천적 설명틀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신기하게도 그들의 주장이 노동중심적 성격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진보적인 사회변혁과정의 주도적 세력으로 위치지우지 못하고 있다. 켈리에게 있어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발전리듬에 조응하는 존재였으며, 무디에게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노동의 대응방식이며, 워터만에게 노동은 그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강제적으로 포섭하는 자본주의 기술의 혁명적 변화에 의해 변형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이러한 무력함의 이유는 모두 자본관계(capital relation)를 이론화하는 방식에서 연유한다. 워터만의 설명에 있어 자본-노동관계는 더 이상 중요성을 갖는 것이 아니었다. 켈리와 무디에게 있어, 노동은 역사적 지리학적 실체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사회적 성격은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공리로서 가정되었다. 노동은 혐오스러운 경제행위자로 표상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되어 온 추상적인 개인들의 집합으로서 기술되는 명제에 불과했다. 이러한 종류의 급진적 정치경제학과 정치철학은 맑스가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반정립 시켰던 바로 그 정치경제학·철학으로서, 전통적인 맑스주의에서 벗어난 것이다(Clarke, 1981; Postone, 1993). 우드의 작업에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동의 형태(the form of labor)에 대해 고려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참사회주의(new true socialism)의 이데올로기와 담론에 반대하면서 노동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이론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을 제기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가 노동의 실질적 성격에 대해 고찰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그녀의 유물론은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도그마적 주장 이상을 넘어설 수 없으며 따라서 그녀가 부정하고 비판하는 이론들과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일 뿐이다. 이하에서 나는 노동의 실질적 성격에 관련된 맑스의 정식화를 명확하게 밝히면서, 그가 단순히 기술적이고(descriptive) 형식적인 노동운동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노동이 운동하는(labour moves) 방식과 관련된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제시할 것이다.





3. 노동이 운동하고 있다(Labour moves)



맑스의 주장에 있어 훨씬 근본적으로 이론적·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가 노동이 직면해야 하는 사회적 자원배분의 불규칙, 기술적 결핍, 형이상학적 신비를 밝혔다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이라는 현상이 유래하는 실체들을 광범위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맑스의 이론을 고전적인 정치경제학과 정치철학으로부터 구별짓는 것은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범주들, 특히 노동의 범주를 분석하는 그의 방식이다. 맑스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노동의 형태에 관한 그의 이론은 사회이론에 있어서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Capital 1: 1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이후 맑스주의 계승자(Marxicologists)들에게서 거의 간과되어 왔다. 맑스는 『그룬드리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비록 노동이 단순한 범주로서 등장하지만, 경제적으로 인식된다면, 노동은 이 단순한 범주를 만들어낸 자본주의적 관계들만큼이나 근대적이다. 어떠한 특수한 성격의 노동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이제 노동의 실질적 성격이 완전히 발전된 총체성(a very developed totality)을 획득하였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것도 더 이상 지배적인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Grundrisse: 103).



맑스는 노동의 근대적 범주에 대한 자신의 탐색이, 전통적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채택되어 온, 그리고 앞서 논의한 켈리, 무디, 워터만 그리고 우드의 연구에서 보여지는 견해와 같은, 노동의 관점에서 자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오히려 그가 의도한 것은 외견상 '단순한 범주'로서 등장하는 관계들의 발전된 총체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맑스의 분석 요체는 노동의 관점에 근거한 비판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에 대한 비판이다. 요컨대, 노동의 독특한 성격은 그것이 분석의 주제가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다(Postone, 1993: 5-6).

맑스는 가치가 단순한 경제적 범주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실체라는 그의 가치이론을 통해서 이 '발전된 총체성'을 분석했다. 가치는 인간행위가 자본주의적 노동으로 편입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사회적 실체(social matter)로서 공허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중립적인 영역이 아니다. 이것은 맑스가 분석하려는 사회세계의 실체이면서 동시에 반실체(anti-matter)이다(Kay and Mott, 1982). 맑스의 사회이론은 가치의 노동이론(a labour theory of value)이기보다는 노동의 가치이론(a value theory of labour)이다(Elson, 1979). 물론 맑스는 종종 전통적 맑스주의(traditional marxism)에 의해 취해진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노동을 설명한 경우도 있었다. 맑스는 그의 이상주의적 경향에 대해 시인했으며 이러한 결점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Grundrisse 15). 또한 맑스의 정교한 이론적 독창성이 그의 작업의 선동적 측면들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훼손된 경우도 있었다(Dinerstein and Neary, 1988).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하다고 일컬어지는 현대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19세기 말의 자본주의적 생산은 맑스가 그의 사회이론에서 분석한 수준에까지 발전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맑스는 아직 자기를 완전히 구성하지 못한 사회세계를 이론화했다. 맑스가 설정한 사회세계가 구현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이다(Negri, 1989: 89). 맑스가 살았던 화석화된 19세기의 범주로 맑스를 비난하지 않는 것, 그리고 20세기 후반을 구성하는 역동적 형태로 맑스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맑스주의 지식인의 책임이다.



맑스는 상품형태의 모순적 성격과 노동력상품의 가치가변적 성격을 밝혀냄으로써 자본의 사회적 관계를 실질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맑스의 분석에 의하면, 상품은 불안정하고 비동일적(non-identical)이며, 그래서 자신의 구체적인 특성(사용가치)이 변화하는 가치(value-in-motion)로 포괄되는 역동적인 존재이다. 사실 자본의 실체는 이러한 추상노동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순은 노동과 외부의 사회실재 사이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생활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형태로, 즉 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의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들의 실천은 오로지 추상노동의 형태로 가치의 증식, 즉 '완전히 발전된 총체성(the very developed totality)'에 기여하는 정도만큼 정당성을 인정받을 뿐이다. 따라서 노동은 자본관계 외부에서 독립적인 존재이유를 부여받지 못하고, 노동의 구체적인 성격은 중요치 않게 된다. "가치의 형태로서 노동은 자신의 물질적 형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이다"(Grundrisse: 309). 이제 가치는 착취율을 계산하는 회계단위 이상의 것, 즉 가장 구조적인 사회원리이며 인간생활의 실질적 성격을 지니는 사회관계의 결정적인 형태이다. "실질적 노동형태들의 완전히 발전된 총체성, 그것들 가운데 어떠한 노동도 지배적인 우월성을 갖지 않는다"(Grundrisse: 103). 맑스는 단순히 '잉여가치가 노동자들로부터 추출된다'라는 자본주의 착취의 일차원적 해석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맑스는 모든 형태의 인간생활이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해명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형태의 인간 예속이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와 연류되어 있기 때문이다(Capital I). 노동은 자본의 부정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는 인간생활의 형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치는 다차원적 매트릭스이며, 그 속에서 노동은 자본의 안티테제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실체이다. 인간의 모든 사회생활은 자본주의적 논리(가치)에 실제로 포섭되어 있다. 이 글에서 재검토된 전통적 맑스주의는 실질적 포섭 이전, 즉 맑스가 형식적 포섭으로 정의한 시기의 노동을 분석하고 있다. 형식적 포섭의 시기에, 비록 절대적 잉여가치의 추상화가 진행되긴 하지만, 아직 노동과정의 구체적 성격이 추상화(가치화)과정에 압도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동은 인간노동의 구체적 형태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조직할 수 있다. 형식적 포섭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생산 일반을 장악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종속되는 다양한 생산방식이 공존한다. 그러나 일단 생산과정의 추상화가 생산의 구체적 과정을 장악하게 되면, 기존의 소유 및 유통방식은 붕괴된다. 이제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헤게모니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과정으로 자리잡는다. 따라서 전체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 된다. 달리 말해서 자본주의 공장이 전체 사회를 뒤덮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은 사회적이고 모든 (사회적) 활동은 생산적인 것이다(Negri, 1989: 204). 자본주의 논리와 이에 저항하는 투쟁이 사회전체 수준으로 확대된다.



"대규모 산업의 자본주의적 형태는, 노동자를 기계의 살아있는 부속물로 전환시킴으로써, 산업내부에서의 유사한 노동분업을 공장 내에서 훨씬 더 괴물같은 형상으로 재생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분업은 공장 밖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다"(Capital 1: 615, 강조는 인용자).



실질적 포섭의 상황에서 상품형태에 내재한 모순은 강화되고, 사회적 적대는 공장수준을 넘어 사회 전체에서 발생한다. 사회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수준까지 고양된 적대 그 자체이다. 자본은 단지 계급지배의 형태일뿐만 아니라 사회의 하나의 형태이다. 즉 발전된 총체성이다(Negri, 1968: 67). 계급투쟁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 인간생활 총체를 포함하는 영역으로 이전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는 개인적 지배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차원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추상적 사회구조들에 의해서 형성된다(Postone, 1993: 31).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 내의 노동(labor-in-capital)'은 결코 '단순한 범주'가 아니라, 추상적 사회구조, 즉 추상노동이다. 노동은 자본이라는 인간생활의 변형태(變形態)로 존재하게 된다. "노동(상품)은 스스로를 가치화한 자본의 변형이다"(Capital 1: 954) 노동자는 "단지 복속적인 기능단위가 되었을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성이 변화한 진화물이 되어 버렸다"(Negri, 1989: 82-83). 노동은 자신의 본성을 변화하도록 강제되었다(Capital 1).

이러한 상황에서 '매우 발전된 총체성'인 자본의 윤곽은 일반적 이해로 표상되기 때문에 불명료하게 보여진다. 자연법이 '변화하는 가치'라는 추상화의 법칙에 대체되어 버렸다.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의 결과 인간생활은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도록 강제되고 '완전히 발전된 개인'(totally developed individual)이 된다. "사회의 다양한 기능들은 이를 위하여 각 개인이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양식이다"(Capital 1: 618). "이러한 운동을 통하여 노동자는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킨다"(Capital 1: 283). 노동은 인간이 스스로 창조해 낸, 그러나 이것이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사회의 변형된 형태이다.



"자본에 대립하는 노동자 내부에 실존하는, 즉자적 존재로서의 노동은 생산적이지 않다. 또한 단순하고 형식적인 유통과정에 참여하는 한, 노동자의 행위로서 노동은 여전히 생산적이지 않다. 따라서 자본에게 귀속된 생산력이 노동이 지닌 생산력의 전위(displacement)이자 치환(transposition)임을 증명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본이 본질적으로 이러한 전위이자 치환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임금노동이 자본을 전제하므로 임금노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본은 노동자에게 낯선 것으로서 자기 자신의 권력을 만들어가는 필연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Grundrisse: 308).



이러한 맑스의 주장에서 주목할 것은 그가 분석하고 있는 자본과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시대적 자본을 혼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맑스가 지니는 급진성은 단순히 그가 노동자 운동에 전해준 범주적 인식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화해할 수 없는 적대의 근원지로서 사회적 과정을 폭로하는 점에 있다. 맑스는 노동을 단순히 노동의 운동(movement of labour)이 아니라 노동이 운동하는 방식(the way in which labour moves)으로 파악한다. 노동은 단순한 범주가 아니라, 다양한 계기 속에서 그 자체가 언제나 자본인 하나의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노동의 운동이 매개되는 과정은 그 자신의 결과 속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Capital 1: 187). 이러한 면에서 노동은 일차원적인 실체로서의 자신의 견고함을 상실하고 사회적 과정의 실재적 표현, 즉 실재적 추상(real abstraction)이 된다. 그것은 "수많은 결정들의 집중으로, 다양성의 통일체이다"(Grundrisse: 101). 실재적 추상으로서 노동은 자신의 확대기능에 의해 사회적 실체들을 구성하는 모순적 과정을 통해 운동한다. 이것이 바로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노동은 인간생활이 직면해야 하는 모순의 직접적인 통일체이며, 동시에 그만큼 진보적 사회변혁에 한계 혹은 장벽이 된다. "또한 우리는 어떻게 이 모순이 노동계급에게 요구되는 끊임없는 희생 속에서, 노동 권력의 무분별한 낭비 속에서, 사회적 무정부상태의 황폐화 속에서 무한히 분출하는지를 보았다"(Capital 1: 618). 노동운동(labour movement)을 노동의 운동(movement of labour)으로 이해하는 것은 노동을 알맹이없는 형체로만 바라보는 것이며, 노동력이 산출되는 과정보다는 노동의 물신화된 형태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노동의 운동을 하나의 단순한 범주로만 파악하는 방식이 지니는 정치적 문제점은 노동이 자신의 재생(regeneration)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돌파구(motive power)가 부정된다는 점이다(Nicolaus 1972: 31-32). 따라서 어떠한 본래의 역동성도 상실한 채, 노동을 위한 동기부여는 외부 대리자에 의해 인위적으로 창안되어야 한다. 즉, 전위정당의 형태이거나(레닌), 형이상학적 실재의 자발적 의식화이거나(룩셈부르크), 혹은 특권화된 조직의 형태로. 마침내 관심은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돌려진다.

새로운 작업조직의 형태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인간사회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파라다임을 이끄는 것은 바로 생산과정의 추상화와 연계된 인간본성의 이와같은 변화이다. 이러한 추상적 사회구조에서 취해지는 - 특히 화폐와 자본의 형태에 기반하여 - 제도적 양식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작업이 행해졌다(Clarke, 1988, 1991; Holloway and Picciotto, 1991). 그러나 노동을 추상적 사회구조로서 다룬 작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사적 생활의 추상화가 자본주의 권력이 근대적 소외형태로 구성되는 기초라고 지적한 맑스의 언급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다. "국가의 추상화는 오로지 근대시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사적생활의 추상화가 근대시기에 비로소 일어났으므로. 정치적 국가의 추상화는 근대의 산물이다"(Marx, 1934: 32). 다행히 이제 이 영역에서 연구작업이 비로서 시작되고 있다. 이것을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는 아니지만 나는 독자들에게 이 문제를 환기시키고자 한다(Negri, 1989; Cleaver, 1999; Bonefeld, 1995; Holloway, 1995; Rikowski, 1999; Neary and Taylor, 1998; Neary, 1999; Dinerstein, 1997). 이 글의 원래 목적을 위하여 이제 새로운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작동하지 않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되어버린 현재의 전지구적 사건들을 검토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세계 곳곳에서 사회운동적 노동주의는 노동의 운동이 성취하고 있는 형식적 민주화과정에 내재한 자유화 경향에 의해 고무되고 있다. 예를 들어, 무디가 주목하였던 남한 민주노총은 더 이상 단시간에 수천의 노동자를 동원하는 데에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에 대항해서 민주노총이 조직하고자 하였던 1999년 5월의 총파업투쟁의 실패는 남한 노동운동의 진보적 가능성을 진단하는 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전해 준다. 기업의 정리해고 위협과 국가의 억압적 정책에 굴복하여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구조에서의 자신의 존재조건을 깨달아야 했고, 마침내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정치라는 제도적 형태속에서 정치적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남한 노동운동의 조직형태가 보여준 한계 속에서도, 노동의 실질적 성격에 내재하는 사회적 적대는 이미 남한과 다른 지역에서 자기 자신을 재창출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Neary, 2000).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이러한 재창출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부상하는 이러한 형태의 적대는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적 정치라는 기존의 틀로서는 이론화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요한 예를 보면, 멕시코의 사빠티스타운동, 아르헨티나의 로드블록운동, 러시아의 새로운 운동, 유럽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인간성회복 운동'(Realidad Encounter for Humanity against Neo-Libearalism)과 유로마치(Euromarch)운동, 그리고 민족국가차원을 넘어선 'WTO에 대항하는 전지구적 민중행동'(Global Peoples Action Against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등. 이러한 운동들의 특징은 이들이 지구적 수준에서 지구적 자본과 맞붙고자 한다는 점이다(Cleaver, 1999).

예를 들어, 유로마치운동은 특정한 단일사안이나 정치에 종속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유럽 프로젝트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구조조정과 그 제도적 형태들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이다(Mathers, 1999; Mathers and Taylor, 1999). 이러한 유럽의 구조조정은 사회복지예산을 삭감하고 민주적 대의체제를 약화시키는 경제통화연합(EMU)의 추진에 의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유로마치운동은 종래의 노동운동조직이 아니라 유럽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도전하고 특별히 실업, 사회적 배제, 이민의 불법화 등에 맞서 싸우려는 전유럽에 걸친 네트워크조직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실제로 이 운동은 현재 유럽수준에서 세력이 약해진 채 구조조정과정에서 파트너가 되어보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주요 노동조합조직의 무관심과 반감을 무릅쓰고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유럽'을 위한 요구를 중심으로 조직된 유로마치운동은, 일자리 창출, 최저 소득과 부의 분배 등을 주장했으며, 이것들은 모두 교육과 의료, 교통 등의 이슈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러한 요구를 내세우면서, 활동가 네크워크조직들은 퀠른(1999)과 런던(1999)의 거리로 나섰다. 이미 이 운동은 유럽 외부로도 시야를 돌렸으며, 인도와 한국의 활동가들과도 연대망을 구축하였다. 이제 유로마치운동은 상이한 요구들을 공통의 인식틀로 연계시키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대립적인 요구들을 조직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로마치운동은 유럽수준에서 초의회적 반대운동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운동은, 비록 아직은 미흡한 측면이 있지만, 사회정의를 위하여 전개되는 지구적 투쟁에서 특수주의(particularism)를 통일하고 구체적 보편주의(concrete universalism)로 나아가는 선구적 반신자유주의운동(a proto-movement against neo-liberal capital)일 수 있다(Mathers and Taylor, 1999: 11).

맑스주의 학계의 지적 책임은 사회운동적 정치의 제한된 열망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새로운 지구적 투쟁들을 특권화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투쟁들이 '사회운동적 열망들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양자에게 모두 이론적·실천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주의 패러다임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을 위한 이론이 새로 창안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이미 칼 맑스의 작업 속에 존재하고 있다. 맑스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이 운동하는 방식의 조직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이 운동해 나오는 역동적이고 모순적인 실체(가치)에 관한 것이고, 또한 노동으로 구성되는 적대의 억제 불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노동은 노동이 조직화되는 제도인 만큼이나 자본의 조직적 형태이기도 하다. 켈리, 워터만, 무디와 우드가 주장하듯이, 인간사회의 진보적 변혁은 노동이 그 자신의 의지로 혹은 다른 제도들과의 연계를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 변혁은 노동의 폐지, 그리고 노동이 구성되는 사회의 폐지에 달려 있다. 인간사회를 위한 새로운 실천적 파라다임은 오직 이러한 폐지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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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

* 원제목은 Labour Moves : A Critique of Social Movement Un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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