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판

저항,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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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life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10건 조회14,441회 작성일2007-05-28 23:54

본문

1.
전에 낙산으로 봄소풍을 가지고 제안을 했었는데, 그만 봄이 지나갔다.
뭐 소풍은 지난 민수 결혼식으로 갈음하기로 하고, 6월에 G8이 열린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G8에 반대하는 여러 행동들이 준비되고 있는 모양이다.

2.
저항하는 행동과 방식들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단식에서부터, 삭발, 파업, 점거, 그래피티, 스트리킹, 행진, 침묵시위,
태업, 불매운동, 불복종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밑의 친구 모집글을 보자니 번역, 자전거 타기, 문화제 등을 기획하는 모양이다.
번역은 seoulidarity 친구들이 잘 하니 제쳐두고,
잔차질은 참가하고 싶지만 자전거를 못타고, 배울려고 해도 도대체 나아지지가
않으니 못한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난장 식의 문화제는 단상 위의 연설과 매한가지 이다. 처음
에는 참을만 하다가, 좀 지나면 지겨워서 못 참겠다.


그렇다면 뭘할수 있을까..


예전에 했던 요런 식의 그래피티도 좋고 여기에 나온 비폭력 직접행동들을 하는 것


3.
요즘 이천시 공무원들과 농민들이 국방부 앞에서 돼지를 능지처참을 해서 화제다.
뭐 군부대를 반대하는 큰 뜻은 비슷한데, 이 경우는 님비인 것 같기도 한데 잘 모
르겠다..
생명을 사랑하고 매우 윤리적인 네티즌들이 이천시와 농민들을 성토하고 있다.

나는 일부 농민들이 군복을 입고, 돼지의 사지를 찟는 퍼포먼스를 한 것을 다르
게 생각한다.


인신제사라는게 있다. 말그대로 인간을 제물로 바치어 제사를 드리는 행위이다.
보통은 짐승을 죽여, 제단에서 완전히 태우거나, 그 고기를 나누어 먹는다. 하지
만 때때로 짐승 대신에 인신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곤 하였는데, 그 때는 매우 큰
축제가 이루어 졌다.


인신제사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서에서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
물로 바친다든가, 예수가 인간의 죄를 위해서 나무에 달린다던가 하고 설화에서도
종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쇳물에 집어넣기도 하는 등 인신을 먹거나 제물로 바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짐승뿐만 아니라 인신을 가지고 종교적 행위를 하거나, 정치적, 사회적 행위를
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있었다.
유교가 팽배했던 조선시대에도 큰 죄를 지은 이들을 목을 잘라 효시를 하였고,
노비의 난, 동학 혁명 당시에는 판관오리와 위정자들을 민중들이 직접 나서서
피를 흘리게 하였다.


옛 사람과 그네들에 있어, 피와 살은 축제이자 저항이었다.


4.
네티즌들의 성토에서, 허세욱 동지의 분신 영상이 진보넷 속보에 올라오자 당장
내리라던 어떤 이들이 연상된다.


전태일, 배달호, 허세욱 열사들의 죽음은 가장 처절한 저항인 동시에 지금 시대의
인신 제사이다.

남아 있는 이들은 기억하며, 힘을 내고, 다시 투쟁하고, 저항하고, 살아가는 것은피와 살을 먹는 것이다.

짐승이나 인간의 피를 내고, 묻히고, 먹는 것이 언제부터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것이 되었는가. 그리고 그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이 어떻게 정형화 되었을까?


우리가 무서워하고 비난해야 할것은 자본가와 위정자들의 야만이지, 민초들의
저항이 야만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된다.


5.
인신제사는 항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큰 일이 생겨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때, 축
제, 식인과 함께 한다.

옛 축제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절정에 올랐을 때 인신 제사를 하거나, 인신
제사를 하고 나서 축제를 시작하는 경우이다.


투쟁도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 죽어야 저항이 타오를 때도 있고, 투쟁의 절정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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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까마귀님의 댓글

까마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천에 관한 일은 어제야 들었네요. 아직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데 어디서 들은 소문에는 이천시장도 지지하는데 한나라당이니 뭐니 해서 또 말이 많더라구요.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방법에는 긍정적인 느낌은 별로 들지 않네요. 단지 그것만 이슈화 되고 나머지 중요한 이야기들이 묻히는 것 같은 느낌 또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님의 댓글

,,,,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옛부터 그래왔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아니겠지요, 누군가가 목숨을 버리게 하는 상황이 문제가 아닐까요, 또한 자신이 분신 등을 하는 것과 동물이 살해되는 것도 같진 않겠지요, 저항이 아니라 저항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봐야겠지요

nolife님의 댓글

nolife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1.
  제 논지는  동물이 살해되는 것이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능지처참
이면에 있는 것들.
 
 군대에 의해, 권력에 의해 농토를 내줘야 하는 농민(뭐 부대가 들어오니
땅값이 떨어질까봐 온 다른 이들도 있겠지만)들의, 군복-돼지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간과되는 것 같아서 이고.

2.
 이천시 사건과 인신 제사에 관한 내용은 별도의 글인데...
분신 영상 논쟁에서, 어떤 이들이 표현했던 당혹과 불쾌가 지금과 유사했다는
것이었지, 둘 자체를 같은 선상에 놓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3. 인신 제사-저항
 덧붙여 쓰자면, 분신과도 같은 처절한 저항도 다르게 바라볼수 있겠다라는
것입니다.

즉 
인신제사-식인-축제 = 죽음-투쟁-저항
축제-인신제사-식인 = 저항-죽음-투쟁

ㅈㄹ님의 댓글

ㅈㄹ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소부르주아적 평화'애호'가 성향의 사람들이 돼지 죽였다고 맹비난하는 것에 대한 훌륭한 답변글이네염. 근데 열사들과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느껴져 좀 불편한 느낌이 드네염.  '우리가 무서워하고 비난해야 할 것은 자본가와 위정자들의 야만이지, 민초들의 저항이 야만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되'는 일이기에 돼지 살해에 '윤리'란 잣대를 들이밀며 투쟁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폄하해선 안되는 게 당연지기 옳소만, 그 논리에 인신제사라는 표현이 껴들어 가지고선, 마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서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던 열사들의 저항이 (비록 처절한 이란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이전부터 있어오던 '문화'의 연속이란 것처럼 보이며,그 절절함과 가슴 아픔이 무색해지는 것 같군염. 당장 살기 힘들어서, 억압에 북받쳐서, 착취를 끝장낼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해서, 혹은 이런 가슴아픈 선도투로 투쟁이 확대되길 기대하면서 스스로 분신한 열사들의 죽음에 인신제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거북하네염. 투쟁을 위해 목숨을 '바친' 행동 자체보다는 목숨을 스스로 버리면서까지 투쟁하게 만드는 구조적 상황에 더 방점을 찍어 말하는 것이 열사들이 남긴 뜻일 거라는 생각도 들고염.

까마귀님의 댓글

까마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자세한 내용은 아직 잘 알지 못했지만, 그 처절함과 혹은 처절하지 않은 그 모든 것들중 모든 방법에 관해 개인적으로는 방법이 긍정적이진 않았어요. 물론, 제가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그게 그 분들에게 중요한 이야기인 만큼 그냥 넘어가자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조금더 같이하는 방법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나름 생각합니다(물론이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 그 분들의 애로사항 혹은 고초 또한 잘 인지 하지 못하지만..) 단지 유연하다는 말로 으레 넘어가려는 의도의 댓글은 아니었고, 조금더 뭔가... 에 말로 잘 표현이 안되네요. 아무튼, 조금 더 자세한 소식을 듣고 싶어요. 누군가의 행동에 있어 옳다 그르다 말하는 것이 제가 하고 싶었다는 말이 아닌거 아시겠지만... 아직은 자세한 이야기들 전해 듣지 못해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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