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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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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6건 조회8,419회 작성일2004-06-2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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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이론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함께 제2의 물결을 대표하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전통적인 여성 운동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동등권에 대한 주장 대신 ''''해방''''을 주장한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그 무엇보다도 여성 억압이 근본적이며 독자적인 체제를 이룬다고 보는 이론이다. 여기서 ''''급진적(radical)이라는 용어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찾는 방식과 태도에서 연유한다. 급진적 페미니즘 노선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채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계급결정론''''이 아니라 ''''자연적인 성적 구분론''''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여성 문제를 바라본다.

급진적 입장에서 보는 여성 문제는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갖는 생물학적 특수성에 따라서 성 역할이 이루어지며, 나아가서 남성 지배가 정당화된다고 본다. 즉 자유주의 페미니즘처럼 제도 안에서 문제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체제 전체를 문제삼는다는의미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처럼 여성 억압을 계급 억압의 부산물로 여기지 않고 근원적인 것으로 강조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남성 지배 메커니즘인 가부장제는 심리적, 문화적 현상으로서 이것이 여성들의 삶을 결정하고 억압하며 통제한다. 여성의 성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통제가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이자 여성 억압 체계이다. 때문에 급진적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 아래 여성의 사적 세계를 정치적인 분석 대상의 영역으로 확대시킨다. 또한 후기로 갈수록 ''''여성은 근본적으로 남성과 다르고, 여성의 문화적인 행동, 체험, 가치 체계 또한 지배적인 가부장제 문화와는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문화적 분리주의를 고집하면서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을 내세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관심을 둔다. 이들은 사회를 성적으로 계급화된 억압 구조라고 보고 성 차별과 그 억압에 주목한다는 점, 남성의 성적 노예라는 점, 그리고 여성의 육체가 남성에 의해서 통제당한다는 점이다. 급진적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페미니즘 혁명이란 곧 생물학적 혁명''''이며, 그것은 기술 발전을 통해서 가능하다. 예컨대 인공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녀 출산력을 통제한다면 궁극적인 생물학적 가족 구조는 사라지게 되고, 이성간에 존재해 온 생식기 사랑이란 없어질 것이며, 자녀출산에 초점을 둔 생물학적인 갖고 개념이 사라지면 곧 경제 단위로서의 가족 개념도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동성애와 이성애의 범주를 파기시키며, 남녀간의 규정된 성 역할로 제도화된 성 관계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여성을 열등하게 만드는 것으로 규정화되었던 천성적인 차이가 오히려 여성들을 더 우월하게 만든다고 간주한다.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따. 급진적 페미니즘은 법적인 제도나 노동보다는 출산, 성애(sexuality),성별 등과 연관되는 사적인 세계나 여성의 육체에 관심을 두면서 이를 정치적 지배 관계의 영역에 포함시켰으며, 여성 억압에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를 규명하려 한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또한 ''''가부장제''''라는 용어를 일반화하면서 여성 대중의 광범위한 의식화를 이루려 했고, 이론적으로도 여성 억압 체계에 대한 분석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급진적 페미니즘은 이론적인 일관성이나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또한 남성과의 협력을 무조건 거부하려는 태도로 인해 오히려 여성을 주변적인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급진적인 3대 여성학자로 분류되는 프랑스의 줄리아 크리스테바, 엘렌 식수, 뤼스 이리가라이 등은 남성과 다른 ''''차이의 문화''''를 주장하며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경제적 구조 및 법률, 역사, 언어를 분석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제2의 물결(1960년대 말 ~ 1970년대 초)이 일어나기 전까지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함께 양대 기둥을 이루었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partriarchy)를 남성에 의한 여성의 생산 노동 및 재생산 노동의 전유로 이해하면서 성 지배에 나타난 물질적 기초(material basis)를 핵심적인 개념으로 삼는다. 계급 모순의 우위성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를 여성 억압을 낳는 궁극적인 요인으로 본 것이다. 보다 구체적이고 사회화된 외적 현실로서 여성들의 실제적인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개념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인데, 주로 성별에 기초하여 권력이 배분되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놓이는 사회제도나 남성 집단이 여성 집단을 지배하는 권력 구조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가부장제''''란 ''''남성이 여성에 비하여 우위적 세력과 경제적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성별에 기반한 권력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원적으로 볼 때에도 ''''가부장제''''는 ''''아버지의 지배''''(rule of rathers)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아버지에 의한 지배에는 성에 의한 지배와 세대에 의한 지배라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가부장제란 가족 가운데서 나이 많은 남성이 권위를 장악하고 있는 제도를 말한다. 때문에 이런 제도 아래서는 가족 구성원 중에서 나이 어린 구성원과 여성이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고, 그들의 노동력 또한 착취당하게 된다. 남성의 이익을 조장하면서 상대적으로는 여성의 이익을 경시하며, 일련의 성인(gender)에 관련된 의미를 지속시키는 하나의 메커니즘이 바로 ''''가부장제''''인 것이다. 이 같은 가부장제에 의해서 총괄되는 생산 양식을 가내제 생산 양식(domestic mode of production)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특히 기혼 여성의 대부분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노동이라는 억압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가부장제의 물질적 기초는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남성에 의한 여성 노동력의 지배에 그 토대를 둔다. 이 지배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생산 자원에 다가가는 것을 배제하거나 여성의 성적 기능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된다. 즉 남성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여성을 임금 노동에서 배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여성의 노동을 남성의 노동보다 낮게 자리매겨 여성을 그곳에 묶어두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종속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관련 있게 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남성이 부르주아지라면 그의 아내는 프롤레타리아다"라는 말처럼 남성은 여성보다 더 강력한 물질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여성들도 공적인 영역에서의 임금 노동과 사적인 무보수 가사노동의 이중 임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여성이 담당하는 가정에서의 일과 모성 역할은 화폐 단위로는 측정될 수 없기 때문에 평가절하된다. 그리고 한 여성이 자신의 성(sex), 출산 능력, 또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팔기로 선택한다면 여성은 남성보다 자본주의적인 상품으로 가치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즉 이들은 여성 억압의 핵심 고리가 ''''여성의 노동''''을 ''''가사 노동''''과 ''''생산 노동''''이라는 이중의 형태를 통해 착취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가사노동이 자본의 이윤 추구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면, 생산 노동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 역시 우연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존립의 필요 조건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으로는 여성을 생산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사 담당자로 규정함으로써 이중 이득을 보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맹점임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정확히 파악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생각하는 여성 운동이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여성들이 갖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해체, 사회주의로의 이행만이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엥겔스보다 적극적으로 여성 억압 구조를 분석한 사람은 바벨이다. 바벨은 여성의 예속 원인을 다름 아닌 여성의 신체적 연약성과 생물학적 특성, 특히 모성적 기능에서 찾았다. 바벨은 무엇보다 사회 제도의 변혁이 진정한 여성 해방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고, 이 같은 논리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핵심은 ''''가족''''이 여성 억압의 기초 기제이며, 이 억압적인 가족 구조는 오직 사회 변혁을 통해서만 변화될 수 있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재산 관계의 구조가 아니라 진실한 애정에 바탕을 둔 일부일처제를 이상적인 가족 관계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가사 노동의 사회화, 여성의 생산 노동 참여와 그 내부에서의 평등성 확보, 경제적 단위로서의 일부일처제 폐지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적 소유와 계급 제도의 철례를 추구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일부 여성의 해방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계급 전체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의 페미니즘은 단편적이고 현상적인 문제제기의 수준을 넘어서서 여성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여성의 노동문제를 전명에 부각시키면서 계급 문제와 여성 문제를 결합시키려고 하였으며, 여성 문제를 여성들의 계급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조명하였다는 점 역시 여성 문제 연구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여성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중한다든가, 사회주의 혁명 후에 나타나는 여성 문제를 이데올로기적 잔재 정도로 폄하하는 것, 남녀의 대립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침윤으로 손쉽게 처리해 버리는 것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낙태, 피임, 매춘, 성 희롱, 강간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지 못하였다. 재생산에 대한 여성 노동의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해 세밀히 분석하지 못했으며, 이 이론 자체가 계속 원론만을 반복하기에 급변하는 현실에 부응하는 구체적 대안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역사 자체가 마르크스주의라는 분석틀을 가지고 페미니즘을 설명하려 하였기에 이 같은 문제는 처음부터 내포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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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개념과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유래

1. 가부장제의 개념

어떤 분이 말했듯이 페미니즘에서 '가부장제'는 핵심개념입니다. 이는 맑시즘에서 '자본주의'가 핵심개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맑시즘에서 자본주의 <개념정의>는 비교적 정리된 논의가 있는데 반해서 페미니즘에서 <가부장제>와 관련된 정리된 논의는 아직 없습니다. 이 부분이 페미니즘 이론의 결정적인 한계이자 동시에 과제입니다.

가부장제에 대한 <개념정리>는 몹시 중요한데, 왜냐하면 여기서에서부 여성억압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원인의 제거가능성을 타진하는 <운동전략>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가 알고 있기로 가부장제의 개념은 로마 노예제 시대에서 유래합니다.
'가족'의 어원에 해당하는 <파밀리아>의 유래는 로마 가족을 의미했는데 그 구성은 <남성가부장 한명> + 여성(부인?) + 아이 + 노예 3~5명입니다. 여기서 여자(부인)과 아이는 '재산'입니다. 사고 팔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인과 아이를 죽이거나 피해를 입힌 사람은 가부장에게 '피해보상'을 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부장의 개념은 <권력의 수장>이라는 의미인데 중요한 것은 가부장의 <물질적 기초>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추후 서술.)

2. 급진주의 페미니즘 발생의 배경

가부장제라는 개념은 문화인류학에서 주로 쓰이던 개념인데 1960년대에 여성학을 통해서 재사용됩니다. 그리고 사회운동적 의미를 획득하며 쓰이게 됩니다. 그 주역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입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출현한 것은 크게 두가지 축으로 구성됩니다.

한축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주요 활동가들은 대체로 60년대 급진적 학생운동속에서 출현한사람들인데 '여성'활동가들이 남성활동가에 비해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남성활동가들이 여성의 억압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에 대해서 분노하게 됩니다.

다른 한축은, 여기에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고학력 여성'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이들 '지식여성'들은 이전의 여성들과 달리 알만큼 알고 사회에 대한 비판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여성들중 다수는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했는데 이들은 가사노동과 직장을 동시에 겸해야 하는 슈퍼우먼을 강요받게 됩니다.

아무튼 이 두가지 축으로 출현한 여성들은 '직장'과 '집안'(가사노동)을 겸하는 이중고통을 당하면서 남성들은 겪지 않는 여성들만의 억압에 대해서 눈뜨고 문제제기하고 저항하게 됩니다.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도 여기에 해당)

이때부터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으로 체득했던 억압의 실체를 '표현'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래서 출현한 것이 <가부장제>라는 개념입니다.


3.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맑시즘 벤치마킹

이렇게해서 1960년대 이후부터 가부장제라는 개념이 사회운동적 의의를 가지고 등장하게 됩니다.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열은 받는데 마땅한 이론적 틀은 없던 이들은 맑시즘의 이론틀을 <차용>하게 됩니다.

일단 <가부장제>라는 개념이 그러합니다. 이는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자본주의가 '자본에 의한 지배'인 것처럼 가부장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이론틀을 고안해낸 여성운동가들은 그럼 가부장제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가능하냐? 등의 난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맑스의 <생산관계>라는 개념틀을 차용해서 <재생산관계>라는 개념틀을 고안하기도 합니다. 재생산관계는 노동력(아이) 그 자체를 생산하는 여성을 둘러싼 관계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여성이 생산하는데 남성이 '전유'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밖에 <성적 대상화>와 개념은 맑스주의의 상품 '물신성' 개념을 차용한 것이며 <여성주의적 당파성> 개념은 맑스주의의 노동계급 당파성 개념을 차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의 상품화>라는 개념은 '상품'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소련식) 맑스주의 정서가 투영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맑스주의가 내재하고 있는 이론적 결함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론적 사생아라고 생각합니다.

'물신성'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이해, '상품'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이해, '당파성'에 대한 맑스주이자들의 이해수준은 참으로 천박한 수준이었는데 여성활동가들은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진주의 페미니즘 경향을 보이는 여성주의자들이 좌파들에게 위와 같은 논리적 틀을 이용해서 반박을 하면 좌파들은 속수무책입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잘못된 이론을 멋모르고 지지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론적 틀로 여성주의자들이 반박을 하니 할말이 없죠.)


4.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분석과 전략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라는 개념틀을 고안하게 되면서 그 <사회적 작동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여러가지 이론들이 제출됩니다. '아이'를 아버지가 전유한다. '여성의 신체'를 남성들이 통제한다.(성적자기결정권,신체에 대한 통제권) 그래서 이런 것들이 실현되는 '공간'으로 자본주의에서 '공장'이 그렇듯이 여성주의자들은 (가족공간과)<결혼제도>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부장제의 핵심장치로 결혼제도를 지목하게 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기 위해서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전략을 채택합니다. 그리고 <여성들만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 각종 여성교육센타,문화센타,피해여성의 쉼터들을 만들고 여성문화와 여성을 위한 책들을 쓰게 됩니다. 내지는 '여성기업'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자매애>를 찬양하게 되고 결혼을 거부하면서 자매애도 실현하는 '레즈비언 공동체' 노선을 주창하게 됩니다.

또한 급진주의자들은 가부장제의 기원을 설명해야 했는데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에게만 있는 호르몬으로 설명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하기도 하고, 가부장제는 문화다.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견해들을 제출합니다.


5. 평가 - 가부장제 개념의 한계

가부장제가 '문화'라면 문화는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별도의 해명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가부장제가 호르몬같은 생물학적 요인이라면 그것은 변화 가능한가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필요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다른 의미에서 '숙명론'으로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이어스톤같은 페미니스트는 '체외출산'과 낙태의 권리를 대안으로 제출합니다.)

한마디로 가부장제를 타도할 수 있는 <이행전략>에 대한 이론이 추가로 제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현재까지도 가부장제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정리되지 않았으며 이해전략에 대한 논의도 깔끔하게 제출된 것은 없습니다. {이행전략을 제출하는 것은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맑스주의자들도 '사회주의'의 상(象)은 곧잘 제시해도 그래서 어떻게 이행할 것이냐의 문제로 가면 왠만한 이론적 공력과 고민 아니면 제출하기 어렵습니다. }

오늘날 가부장제라는 개념의 쓰임새는 거의 얼치기 맑시스트들이 세상 그 모든 현상들을 각론과 치밀한 분석없이 단 한마디로 '그건 자본주의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수준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가부장제라는 개념은 하나 마나한 말과 비슷한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얼치기 맑시스트들이 '너는 쁘띠잖아'라고 말한 것처럼 합리적 논쟁에서 밀리면 '너는 남자이고 가부장제에 찌들었어'라는 비합리적 자기 방어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중에서도 가부장제에 찌든 여성이 있습니다. 여성들중에서도 가부장제에 찌든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그 여성과 그렇지 앟은 여성을 구분짓는 '그' 가부장제가 무엇인지 다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역사적 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을 아주 높이 평가합니다.

첫째, <결혼제도>에 대해서 본격적 문제제기를 집단적으로 한 페미스트들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제도에 대한 문제는 사실 1860년대 후반과 1920년대 초반 자유주의 페미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력하지도 않았고 집단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둘째, (일방적) '이혼의 자유'를 실현합니다. 이혼의 자유는 자유주의 페미가 강력했던 1920년대에 유럽에서 실현된 나라도 있는데, 미국의 경우 1970년대에 실현됩니다. 여성의 해방은 일부일처제가 해체될때만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이론적 결론인데 급진주의 여성들이 그것을 쟁취합니다. (이혼의 자유는 경제적으로 독립가능하지 않고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전업주부여성과 이해관계가 충돌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중산층 전업주부들은 '간통죄'같은 것도 폐지를 반대합니다. "경제적 생존권"의 위협이기 때문에.. )

셋째, 최초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제기하는 이론적 기여를 했습니다. 자유주의 페미는 남성과 여성의 '형식적 평등'을 주장했었고 맑스주의 페미는 자본과 노동의 차이를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이 합쳐서 실천적으로 쟁취된 것이 남녀고용평등법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급진주의 페미는 남성과 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제기합니다. (여성할당제는 이렇게 '근본적 다름'을 상정할때 원리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할당제는 오히려 남녀평등대우원칙에 어긋납니다.)

넷째, 근대의 핵심성과물인 <신체의 자유>를 한단계 끌어올렸습니다. 낙태권, 강간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 성적자기결정권 등에 대한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이들의 성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여성보다 더 소수자에 해당하는 '동성애자'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상정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결혼거부 레지비언 공동체 노선을 채택했던 급진주의 여성운동가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레즈비언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선택은 이후 1980년대를 경과하면서 동성애자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7.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한계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논의는 간략하게만 해보자면,

(1) 급진주의 페미의 주역들은 <결.혼.거.부.가. 가.능.한.>, <경제적 자립가능한> 여성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백인+대졸+여성들>이었습니다.

(2) 그래서 이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문제제기는 '흑인여성'과 남미의 히스패닉 여성들에게서 제기됩니다. 급진주의 페미는 여성문제는 관심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흑인남성과 흑인여성'의 인종적 억압에 대해서는 침묵했다고 비판받습니다. (이러한 1960~70년대의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흐름에 대한 반성으로 1980년대가 경과하면, 여성들 내.부.의. '차이'에 주목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등장합니다. 여성주의적 '당파성'은 다시 '차이'로 소급됩니다. )

(3) 노동계급 여성에게서 비판받습니다. 노동계급 여성은 남성과 공동연대하여 '자본'과 투쟁해야 하는데 남성을 전부 적으로 돌려버리면 '백인대졸여성'들은 별문제 없을 수 있겠지만 노동계급 여성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자본'에게 득이 되는 이론이라는 비판입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유럽에서는 가부장제적 모순과 자본주의적 모순을 동시에 주목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SF)이 등장합니다.}


실제 진행되었던 흐름은 대충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고 이론적 한계를 간단히 지적하면,

(1) 이들은 <결혼제도가 가진 여.성.보.호.적.> 측면을 완전히 간과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간통죄 폐지반대와 일방적 이혼 반대의 핵심세력은 (남편이 중산층 이상인) 전업주부입니다. 이들에게 결혼제도는 안전망의 역할을 합니다.

(2)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이 화두와 씨름을 했는데 제가 내린 결론은 <근력>과 <출산능력>임. 자세한 설명은 후일로 미룸.)

(3) '기회의 평등'에 입각한 자유주의적 원리가 가지는 긍정성을 포착하지 못하는 역편향을 보였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다름'은 다름의 영역대로 포착하고, '같음'은 같음의 영역대로 별도로 포착해야 올바른 대안모색이 가능합니다.

{'기회의 평등'은 자유주의적 평등론과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핵심입니다. 이에 대한 '역편향'(혹은 반대편)에는 '결과의 평등'이 존재합니다. 구 소련을 비롯한 나라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주장했던 노선이기도 하지요. 최근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등론적 관점에서 봤을때 결과의 평등은 '능력'과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적 평등이론은 <조건의 차이>를 동일선상으로 보장해주는 <조.건.의. 평.등.>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도 아닌, 결과의 평등도 아닌, 조건의 평등이 올바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8. 결론으로..

80년대 학생운동이 어떤 편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80년대 군부독재의 강고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적'은 저항주체를 다급하게 만들고 개인(및 다양성)을 무시하는 강력한 단결을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분명하게 역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역편향조차도 일정정도는 '근거있는' 발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근거있는' 발생은 <근거가 소멸될때> 역사발전과 함께 교정될 것입니다.

그 핵심은, <모성(母性)의 사회화>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급진주의 페미 발생배경의 핵심은 <직장과 가정의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 때문입니다. <모성의 사회화>가 되어 있지 않으면 보육,가사일이라는 것은 남성과 여성사이에 그야말로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맞벌이의 경우 가사노동의 분담은 의무입니다.)

그래서 노동계급에 기반한 노동자정당이 <모성의 사회화>싸움을 성과적으로 한다면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경향을 보이는 일련의 흐름들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높은 사회적 의식수준'을 가지고 노동계급과 연대하고 동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편향에 대한 비판은 <곧> 우리들 자신에 대한 비판과 실천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s :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발달한 유럽은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연대'하는 <사회주의 여성운동>(SF)의 흐름으로 발전하면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이 약하고 노동자 독자정당 노선을 거부하고 '친민주당' 노선을 선택했던 미국은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이 연대하지 못하고, 독자노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미국 사회는 <중.산.층. 백인 여성>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의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각에 진출한 여성숫자, 여성 국회의원 숫자, 어퍼머티브 액션정책들을 볼때요~.

그런데, <압도적 다수의 여성들>, 그러니까 非백인 여성, 노동계급 여성, 비정규직 여성들은 그야말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미국식 여성운동과 유럽식 여성운동의 갈림길은 한국 여성운동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민주당 노선으로 민주당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연의 입장이 전형적인 미국식 여성운동의 입장에 가까운 것 같네요~. {물론, 여연은 '감히' 급진주의 여성운동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 아무튼, 이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폐미니즘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산엄자본주의 시대의 브르조아적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일 뿐이다.

1.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어느정도 성장하자,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우선, 풍부한 상품원료의 공급지이자 시장의 확보의 문제와 더불어 풍부한 노동력의 확보이다.

1-1 처음의 문제는 우리가 다 아다시피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을 통해서 그 진실을 보았었다.

1-2. 두 번째의 문제는 <아직 우리나라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서구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까지 잡아와 노예까지 시키고, 또 제 3세계사람들에 대한 이민정책까지 쓴 것이다.

1-3. 그러나 자본가들이 볼때, 가장 합리적인 것은 인구의 반인 여성들을 일터로 나오게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때, 풍부한 노동력의 안전한 확보는 말할 것도 없고, 남자 노동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이중의 득이 있는 것이다. 노동력이 풍부해진 마당에 노조의 입김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폐미니즘은 근본적으로 브르조아지들의 이념인 실증주의와 경험주의 과학주의를 전제로 해서 가능하다.

2-1. 근대의 사상적 혁명은 근본적으로 브르조아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었는데, 브르조아지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귀족들을 견제하고, 물리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필요로 했다.

2-2. 근대 이전과 근대이후의 사상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자들의 다양성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 다양성이 질적이고 존재론적인 차이에의한 다양성인가 아니면, 그저 무차별적인 양적인 다양성인가의 차이다. 부르조아지들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를 무기로 해서 모든 존재론적인 다양성을 그저 양적인 다양성으로 봄으로써, 즉 근본적인 존재론적 다양성과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그리고 모든 것들을 동질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그럼으로써 자신들과 귀족들의 차이를 무화시키고, 오로지 경제적이고, 물적인 토대를 통해서 자신들의 신분을 화고히 했다.

2-3.페미니즘 역시 이런 실증주의와 경험주의를 전제로 해서 모든 문화적 다양성과 전통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럼으로써 모든 것들의 질적인 차이와 특성을 무화하고, 현실적인 모든 제도와 문화를 인위적이고, 억압적인 권력장치의 고안물로 본다.

2-4. 이런 전제에서 남과 여의 존재론적 차이(차별이 아님)는 무시되고, 그 차이라는 것은 오로지 남성들의 야만적인 권력욕의 결과로 매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사회를 인위적이고, 탐욕스런 남성들의 억압적 고안물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해 아무 근거도 없는 '가부장사회'라고 규정내리기에 이르는 것이다.

3. 그러나 그녀들의 동기야 어떻든 간에, 결국 페미니즘은 모든 인간들을 단순히 노동자로 취급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같은 것들은 점점 무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오로지 노동자로만 보기 때문에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여성 당사자들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자본의 대리인 노릇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4. 자본의 공작은 너무나 치밀하다. 사실, 페미니즘이 보격화된 것은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퇴조하면서 부터이다. 자본주의와 그겻에 결탁한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의 내부적 모순을 은폐시키고, 다른 곳으로 전가시키기 위해 남성과 여성을 이용한다. 즉 남성을 기존의 자본가의 이미지로, 그리고 여성을 기존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미지로 놓는 것이다. 구도가 이렇게 짜여지는 순간 더이상 참된 진보의 노력은 불가능해지고, 다 같은 노동자인 여성과 남성간의 끝없는 분열과 반목만이 일어나고, 그 중간에서 자본과 브르조아는 단물만 빨아먹으면 되는 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5. 사실, 우리나라는 페미니즘을 쉽사리 적용할 수 없다.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나라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19,20세기에 제국주의자들과 백인우월론자들의 논리와 판박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우리나라의 얼치기 페미니스트들은 사실상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압자이들이자 또 다른 사대주의자들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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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매스미디어와 여성/김선남/1997/범우사>에서 발췌및 편집한 글임을 밝힘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가 본 이데올로기란 이세계에서 자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본가, 즉 부르주아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너무나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어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수용하며, 부르주아의 권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정부, 교회, 학교, 언론과 같은 제도를 통하여 유지된다는 것이다.여성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적 접근은 바로 19세기의 정치적 분위기속에서 도출되었다. 특히 마르크스를 비롯한 엥겔스 같은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여성해방의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였다. 고전적인 마르크스적 접근에서 본 여성문제란 자본주의 제도에서 발생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기제인 사유재산제도를 곧 남성의 억압 기제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여성이 사회로부터 받는 성적 억압은 사유재산제를 지탱시켜주는 일부일처제라는 가족구조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족을 보다 큰 사회의 계급관계를 축소시킨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시각에 기초하여 여성문제를 조명하였다.이들은 사회의 자본논리, 즉 계급적 시각으로 접근할 때 여성이 갖는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컨데 증산층 여성과 생산직 노동자 여성들이 갖는 상이한 환경 때문에 이들이 겪는 불평등도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초점은 여성억압을 계급억압의 체계안에서 이해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성 차별주의란 부차적인 사회 현상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여성문제보다는 계급문제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이들은 부르주아 여성을 경멸하고 프로레타리아 여성을 여성운동의 주체로 설정한다. 곧 이들이 생각하는 여성운동이란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여성들이 갖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엥겔스의 여성이론에 따르면 그는 인류의 대립이 남녀간의 불평등에서 시작된다고 전제하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란 다름아닌 자본주의체제, 특히 부권제와 사유제산제에 입각한 가족구조라고 보았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해체, 사회주의로의 이행만이 여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엥겔스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억압 구조를 분석한 사람은 바벨이다. 바벨은 여성의 예속원인은 다름아닌 여성의 신체적 연약성과 생물학적 특성, 특히 모성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바벨은 무엇보다 사회제도의 변혁이 진정한 여성해방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같은 바벨의 논리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마르크스페미니즘의 핵심은 가족이 여성억압의 기초 기제이며, 이 억압적인 가족 구조는 오직 사회변혁을 통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재산관계의 구조가 아니라 진실한 애정에 바탕을 둔 일부일처제를 이상적인 가족관계로 규정하였다.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장점은 여성문제를 사회구조적인 틀 안에서 고찰하였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문제를 여성들의 처한 계급이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조명하였다는 점 또한 여성문제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여성문제를 계급문제의 하위문제로 생각하였다는 점에서 이 입장이 여성문제를 다소 경시하고 잇다는 한계점을 지적 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성억압이란 계급억압 속에서 야기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계급해방을 통해서 성해방을 찾고자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개인의 "자유"원리에 입각하여 여성과 남성을 비롯한 모든사람이 동등하게 태어났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여성과 남성, 즉 모든 사람의 능력차이라는 것은 문화적 학습의해 습득되는 것이라는 의견이다.이들은 남녀 모두가 스스로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는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회가 이러한 개인적 자유를 막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자유주의 페미니스들의 궁극적 목표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남녀 모두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선택의 자유권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성차별의 궁극적 원인으로 보이는 생물학적 원인 즉, 선천적인 요인을 철저히 거부한다. 이들은 여성을 개개인의 개성이 있는 이성적 존재로 파악하며 여성 스스로 성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의사 결정자 주체로 생각한다. 또한 이들은 사회의 법적인 불합리한 정치와 여성 개인의 무능력 혹은 무지에서 여성문제가 야기된다고 본다. 따라서 여성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법적 개혁이나 교육과 같은 사회장치의 개선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따라서 이들은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우선 정치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변화란 기존의 정치, 경제제도 속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이러한 사회 개혁은 개인적 능려과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한 사회 제도가 불합리하거나 소극적이라면 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녀평등이 실현될 것 이라고 보는 낙관적인 시각이다.

현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억압적인 성역할로부터 여성이 자유로워지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또한 최근 몇몇의 급진적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문제의 극복 방법으로 양성적 인간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양성적 이간이란 남성적 성질과 여성적 성질의 합알)
양성성을 중시하는 것은 한 개인의 생물학적 성이 결코 그사람의 심리학적 또는 사회적 성별을 결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부터 출발한다. 또한 앞서말한 대로 이들은 교육적 법적 개혁을 통해 여성의 삶의 질이 증진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전문적인 직업상을 구축하는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정의 실현을 위해 방해하는 사회적 메카니즘에 대해 주목하거나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들은 남녀 평등이라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 고찰을 염두해 두지 않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급진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1960년대 밀과 1970년대에 뉴욕에서 결성된 단체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 노선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채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계급 결정론''이 아니라 ''자연적인 성적 구분론''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여성문제를 바라본다. 좀더 쉽게 말하면, 급진주의 입장에서 보는 여성문제는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갖는 생물학적 특수성에서 나온다고 본다. 즉 생물학적 특수성에 따라서 성역할은 자연스럽게 이루워지며, 나아가서는 이것에 의해서 남성지배가 정당화 된다. 이때 이들이 말하는 남성지배 메커니즘이란 바로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이다.

가부장제란 무엇인가? 이는 ''남성이 여성에 비하여 우위적 세력과 경제적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성별에 기반한 권력체계''라고 정의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가부장제란 바로 남성의 이익을 조장하면서 상대적으로는 여성의 이익을 경시하여, 일련의 성(gender)에 관련된 의미를 영속화시키는 하나의 메카니즘이다. 결국 가부장제는 심리적 문화적 현상으로서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으로 변화지 않는것이다. 이것이 여성들의 삶을 결정하고 억압하며 통제하는 것이다. 여성의 성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통제가 바로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인것이다. 따라서 가부장제란 여성 억압 체계인것이다.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에 관심을 둔다. 이들은 사회를 성적으로 계급화된 억압구조라고 본다. 특히 사회내의 그 어떤 차별보다도 바로 성차별과 그 억압에 주목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말하는 여성억압자란 바로 남성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생물학적 특수성에서 여성문제가 기인한다고 본다. 이들이 말하는 여성문제란 여성들이 어머니이기를 강요당한다는 점, 남성의 성적 노예라는 점, 그리고 여성의 육체가 남성에 의해서 통제당한다는 점이다.따라서 여성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것이고, 이러한 가부장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지닌 생물학적 특수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입장에서 공격 대상은 바로 가족제도이다. 기존의 가족제도가 억압적인 성관계 및 사회관계를 창출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급진주의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페미니즘 혁명이란 곧 생물학적 혁명''이며 그것은 기술발전을 통해서 가능하다. 예컨데 인공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녀출산력을 통제한다면, 궁극적인 생물학적인 가족 구조는 사라지게 되며 이성 간에 존재해온 생식기 사랑이란 없어질 것이다. 자녀 출산에 초점을 둔 생물학적인 가족개념이 사라지면, 곧 경제 단위로서의 가족개념도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동성애와 이성애의 범주를 파기시키며, 남녀간의 규정된 성역할, 예컨데 제도화된 성관계도 사라지게 할 것이다.급진주의 페메니즘은 여성문제를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것은 첫째, 여성문화라는 개념을 창안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회 변화는 여성문화의 제도를 통하여 가능하다고 한다. 둘째, 여성의 관점에서 현실을 개념화시켰다는 점이다. 셋째, 전통적인 여성 인식의 많은 부분이 남성 편견적이며, 전통적인 정치 이론은 여성복종을 정당화하는 이원론을 적용한다는 것을 밝혔다. 넷째, 사회의 성역할 구조를 가시화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197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반발로 제기되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성문제에 무관심했고 또 오직 성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급진주의자들은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성에만 관심을 두고 가부장제를 심리적 문화적 상부구조로만 본다고 비판하였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보는 여성문제란 바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여성문제를 만드는 주체를 남성과 자본가로 상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다음과 같은 항목에 관심을 두었다. ① 육체적 재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 ② 가부장제는 계급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떠한 관계를 갖는가 ? ③ 여성억압은 남녀간의 성관계에서 발생하였는가 아니면 계급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졌는가 ? ④ 인종 억압, 계급억압, 성별억압, 이세가지 체계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 이상과 같은 항목에 관심을 둔 사회주의 페미니스들은 급진주의적 입장의 많은 부분을 수용하였다. 특히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성문제를 성차별과 계급차별로 분리하지 않고 오히려 통합시켜서 조명하였다는 데서 이들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오직 계급사회의 구조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계급관계(자본주의)와 남녀관계(가부장제)를 살펴봐야 여성억압 현상을 보다 정교하게 밝혀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초기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학자 쥴리엣 미첼은 여성문제의 해결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해체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혁명과 맞먹는 정신 혁명에 의해서 여성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리라고 보았다. 미첼은 과학적 사회주의 방법을 동원하여 구체적인 여성억압의 사례를 생산, 출산, 사회화, 성관계등의 문제들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문제들의 해결방법을 통하여 여성억압을 종식시킬 수 있을거라고 주장하였다. 후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하이디 하트만은 미첼의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가부장제개념을 더욱 확대시켰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를 분석하고 가부장제의 물적 기반을 여성노동력의 통제와 여성의 재생산능력 통제로 보았다. 미첼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의해 각 개인 각 개인의 무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여성억압의 이념적 형태를 살핀 반면, 하트만은 여성 노동력에 대한 남성들의 역사적 지배를 물적 토대에 근거한 사회내의 관계구조로 파악하였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이 일차적으로는 경제적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에서 마르크스주의 접근과 일치한다. 또한 여성억압이 재생산과 가족이라는 사사로운 영역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부장제의 중요성을 지적한 급진주의적 접근과 일치한다.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달리, 경제적 억압을 부차적인것으로 보지 않는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는 달리 인종차별적 억압을 부차적인것으로 다루는 데 저항한다.
결론적으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생산소유권뿐만 아니라 사회적 체험까지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것은여성억압의 근거를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전반적인 구조속에서 찾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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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페미가 서구의 페미와 확연한 차이중에 하나가 선천적 피해의식과 사회적 허영심으로 권력지향성을 보인다는것이다.
이미 페미단체는 막강한 정치세력을 이루고 있고 또 권력쟁취에 혈안을 보이고 있다는것을 모르는 바보는 없을것이다.

페미들이 말하는 평등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고정관념속의 평등.. 책에 나오는 그런 평등으로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항상 페미의 허영심을 채우기위한 단순한 이용대상이 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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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미친꽃님의 댓글

미친꽃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계속 이렇게 남의 글만 퍼오지 말고, 직접 페미니즘을 공부해 보심은 어떨까요? 페미니즘 관련서적의 리스트가 필요하다면 뽑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직접 읽고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세요.

-.-;;님의 댓글

-.-;;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특히"사실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나라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19,20세기에 제국주의자들과 백인우월론자들의 논리와 판박이다. " 라는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쇼르쏘띠님의 댓글

쇼르쏘띠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자, 일단 남의 글을 퍼오시려면, 이 글을 작성한 이가 누군지, 출처가 어디인지 밝히시는 게 우리에 대한 예의이고, 작성한 사람에게는 어디로 퍼간다, 라는 공지를 해주시는 게 그 분에 대한 예의겠지요?

다음, 어떡하죠. 저한텐 님이 퍼오신 글이 이제껏 님이 펼치던 이야기들의 발등을 찍고 있는 부분이 보이는데 말입니다. ^^ 

이곳에서 님께 반박하던 분들이 페미니스트들이 많다는 생각에 속성 페미니즘 마스터를 시도하신 모양인데, 보통 그런 분들이 자기 손의 도끼로 자기 발을 찍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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